고요가 닿지 않는 곳

미니픽션

by 서히

1.

고요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 고요는 이미 오래전부터 닿지 않는 감정이었다.

잠들다 깨어나기를 반복한 날들의 피곤이
손끝에 미세한 떨림처럼 남아 있었다.

그때 복도에서 ‘톡’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덜 깬 아이의 발이
바닥을 천천히 스치는 소리였다.


그녀는 잠시 멈춰
어둠이 남아 있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순간마다 멈추게 되는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 소리만은 유난히 가까이 와닿는다는 사실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싱크대 앞에서 물을 틀자 찬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밤새 식어 있던 피곤이 그 온도와 함께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물을 천천히 따뜻한 쪽으로 돌렸다.
온기가 손끝에서 번져
굳은 피로가 아주 조금 풀리는 듯했다.


2.

그녀의 아침은 소리로 열린다.

숟가락이 부딪히는 금속성,
굴러가는 장난감의 둔탁함,
반쯤 열린 문이 흔들리는 작은 마찰음.


그 소리들은
그녀의 내면 가장 얇은 틈을 스치며 지나갔고,
말할 수 없는 피로는 그 사이에 숨어 조용히 스며들었다.


3.

햇빛이 바닥을 스치며 방 안의 결을 조금씩 드러냈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빛은 공기의 결을 따뜻한 쪽으로 천천히 밀어놓았다.

그녀는 빨래 더미를 들었다.
섬유 사이에 갇혀 있던 냄새들이 공기 속으로 가볍게 흘러나왔다.

아이의 티셔츠는 손끝에 닿는 순간 금방이라도 다시 뛰어오를 것처럼 가볍고,
나의 구겨진 셔츠는 밤새 눌러둔 생각처럼 선명한 선이 남아 있었다.


며칠, 아니 몇 달 동안
온전히 자기 시간이라고 부를 만한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 숨결은 섬유의 냄새와 함께 옷감 안에 묻혀 있는 듯했다.

손이 잠시 멈췄다.
냄새 때문인지 몸 안쪽에서 불쑥 일어난 반응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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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히(徐熙). 끝난 줄 알았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기록하는 예술가. The Residue Collector &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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