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1)

by 오얼 OR

두 번의 도전 끝에 대학을 졸업한 지 21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크게 쓰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3년 반 시간을 버텼다.

밥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삶이지만 마지막 심사가 끝나고 인준서에 도장이 모두 찍혔을 때 가장 많이 생각난 건 아버지였다.

떠나가신지 어느덧 8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모시고 있는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돌아가신 후 내가 후회하지 않고 싶어서 서로 마음에 맞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일상이었다.

이제는 지천명을 코 앞에 두고 있는 나이지만 불혹이 지나서야 알았다. 내가 내 자식들을 위해 잠도 줄이고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보따리를 싸서 일을 하러 다니는 것처럼 그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똑똑한 척하고 살았지만 그건 척에 불과할 뿐 가장 가까이에서 살았던 아버지의 노력에 대해서는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마음 속의 감사도 크게 하지 않고 살았던 삶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이루지 못했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늘 나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남들이 선호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도 나에게는 늘 짐이고 부담이었다. 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에게 그가 왜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알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한 단계 더 나은 결과를 얻고 그 과정을 넘어갈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아버지가 설정해 놓은 높은 벽을 넘어가기 위해 한 편으로는 원망하고 한 편으로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모자르지 않는 삶, 여유있어 보이는 생활이었지만 나는 늘 바빴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건 학교를 다닌 22년 동안 박사공부를 할 때 뿐이었다. 박사가 된 나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줄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부부였지만 상반되게 늘 자유와 칭찬 뿐이었던 어머니와는 달리 이 순간 아버지가 안 계신 게 아쉬운 건 어떤 이유인지 내 자신도 이해는 안된다.

사시는 동안 보여줄 수 있는 성과를 모두 내고 싶어서 석사를 받고 전문대에서 3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그 또한 아버지는 만족해 하셨다. 다만 박사를 받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를 늘 바라셨다. 난 그 때도 그가 생각하는 그런 과정은 내 나이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학위는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디딤돌이 아니었다. 그럴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고 그냥 자기계발, 자아성취 그런 개념의 공부라는 생각 뿐이었다. 난 제일 상위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끝까지 공부를 해 보고 싶었다. 그 이상은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떠나간 친구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