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아버지가 되려고 많은 시도와 노력을 기울이는 시간동안 그는 병상에 누워계셨다. 가족 한 사람이 아프면 모든 가족이 힘들어진다는 얘기를 남들에게는 들었지만 내가 겪어보니 술 한 잔이 아니면 잠을 못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참 승진을 거듭하고 최고 연봉을 갱신하고 있을 때 나에게 삶의 짐도 최고치에 이르렀다.
그 상황이 되면 예전같은 원망이 생길 줄 알았는데 한참의 사회생활에 닳고 닳은 나는 그냥 그 상황을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버지 간병에 지치고 노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도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아내도 입시생이 된 아이들도 내가 없으면 내가 쓰러지면 모두 불행해진다는 생각으로 5년을 보냈다.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매일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웨이트를 하고 아침부터 아버지 거동을 도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계속 바빴던 나의 모든 일들도 아버지의 장례식과 함께 강제로 종료되었다.
작년 가을부터 오늘까지 백일 가까운 시간을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감정이 주체가 안돼서 차를 세우고 울고 간 적도 있었고 아버지 산소에서 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린 시간이었다.
그래도 술을 자제하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삶을 다지고 있다. 가족들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안정을 찾는다는게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잊혀지는 건 아니지만 더 앞으로 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벽에 혼자 서재에서 일을 하다가 그냥 아버지 생각이 났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가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기대했는지 왜 그랬는지에 대해 가끔은 생각을 해보는 것 같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는데 마음 속 한 켠의 가끔 꺼내보는 후회의 조각은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