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가장 가깝고도 예리한 세계
주말 아침, 호수공원 주변을 거닐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 후 이른 점심을 먹으러 들른 소박한 파스타 가게였다.
내 옆 테이블에는 네 식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단란해야 할 주말 외식 자리였지만, 아버지가 쏟아내는 일장 연설에 공기는 점차 무거워졌다. 어느 순간, 중학생 남짓 되어 보이는 아들의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굳이 내 생일인데, 끝까지 그 얘기를 하셔야 해요?"
어머니는 시선을 떨구었고, 동생은 휴대전화 화면만 묵묵히 쓸어내렸다. 아버지는 물을 단숨에 비우더니 탁한 허공만 응시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 너머로 그들의 날 선 침묵이 새어 들어왔다.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아버지의 무거운 훈계 앞에서 입술을 깨물던 첫째,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만 내려다보던 둘째, 그리고 애써 할 말을 삼키며 굳어있던 어머니까지.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우리 집의 오래전 어느 식탁이 그곳에 고스란히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나의 서툴고 아팠던 어린 시절이 남 일 같지 않아, 차마 혀끝에서 맴도는 파스타를 삼키지 못했다.
얼마간의 적막 끝에, 생일을 맞은 아들이 슬그머니 일어나 앞치마 네 개를 챙겨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리에도 조용히 하나를 내려놓았다. 서툴지만 분명한 화해의 제스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버지가 떠난 테이블엔 역설적이게도 묘한 평온이 찾아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남은 세 식구는 다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파스타를 말아 올렸다.
식사를 하던 아들이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고 밖으로 향했다. 식당 앞을 서성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본 적이 없어, 식당 밖을 서성이는 저 무거운 어깨를 온전히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식은 파스타를 허겁지겁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아들이 건넸던 앞치마를 테이블 한구석으로 툭, 밀쳐냈다. 그 무심한 손짓은 분노라기보다는, 어른의 알량한 자존심과 차마 건네지 못한 미안함이 뒤엉킨 서툰 언어처럼 보였다.
가족이라는 촘촘한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자주 길을 잃는 걸까. 친밀함은 종종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서로를 찌르고, 기대감은 어긋난 채 허공을 맴돈다.
가게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매일 교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춘기 아이들의 뾰족함 뒤에도 저런 여린 마음이 숨어 있겠지. 교실 안의 작은 어른이자,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인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소년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밀쳐진 앞치마는 끝내 식탁 한구석에 구겨진 채 남겨졌다. 아무도 그것을 다시 펴지 않은 채, 그들의 씁쓸한 주말 점심 식사가 조용히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