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을 훌쩍이며 친 생애 첫 트로이메라이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마디였다. 손가락이 미끄러졌고, 엉뚱한 건반이 눌렸다. 조용한 연주회장에 불협화음이 퍼진 순간, 하필이면 당황한 숨과 함께 '훌쩍' 하고 콧물까지 새어 나왔다.
무대 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부터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아무 말이라도 적어내지 않으면 손이 더 떨릴 것 같아 스마트폰 메모장을 두 번이나 켰다 껐다. 올해로 피아노를 배운 지 2년. 늘 편안한 뉴에이지 악보 곁을 맴돌다 처음 마주한 학원 연주회였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낯선 타인들 앞에 가장 먼저 나서야 하는 첫 번째 순서였다.
올해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으며, 매일 아침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 앞에 선다. 교실에서는 어떤 돌발 상황에도 능숙하게 말을 이어가는 제법 그럴듯한 어른이어야 했다. 하지만 늘 남들의 연주를 듣던 안전한 객석을 떠나, 내 손끝에 모든 시선이 쏟아지는 피아노 앞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리허설 때부터 적잖이 위축되어 있었다. 내 뒤에 앉은 사람들은 쇼팽의 발라드나 슈베르트의 환상곡처럼 건반 위를 화려하게 휘몰아치는 곡들을 뽐낼 예정이었다. 내심 부러웠다. 저런 현란한 기교 뒤에 나의 서투름을 슬쩍 숨겨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고른 곡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였다. 느리고, 조용하고, 숨을 곳이 없는 곡. 음 하나가 조금만 흔들려도 연주자의 불안한 내면이 투명하게 비치는 악보. 그래도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보여주기엔 이 느릿한 템포가 내게 더 맞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첫 음을 짚었다.
초반의 흐름은 괜찮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긴 했지만 천천히 음을 이어갔다. 그러다 수백 번을 연습하며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그 마디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진 것이다.
'여기서 멈출까.'
찰나의 순간, 건반 위에서 손이 길을 잃고 맴돌았다. 당황한 마음에 헉, 하고 급하게 헛숨을 들이켰는데 하필이면 정적을 뚫고 '훌쩍' 하는 콧물 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연주회장에서 콧물 소리라니. 얼굴은 화끈거렸고 이미 연주는 망가진 것 같았다. 그래도 남은 악보의 여백을 텅 비워둘 수는 없었다. 매끄럽지 않은 호흡으로, 콧물을 훌쩍이며 흠집 난 음들을 하나씩 다시 이어갔다. 조금 투박해진 손끝으로 서툴게 남은 음표들을 기어이 누르고, 마지막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비로소 멈춰있던 숨이 쉬어졌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 교실에서 완벽해 보이려 애쓰던 사회 교사는 온데간데없고, 콧물을 훌쩍이며 곡을 틀린 어설픈 어른 하나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고요한 홀을 울렸던 엉뚱한 실수보다, 무너진 마디를 지나 마침내 마지막 음까지 짚어냈던 서툰 손가락의 감각이 더 또렷하게 남은 까닭이다. 어쩌면 진짜 다정함이란, 망쳐버리고 찌질해진 순간에도 그런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끝내 자리를 지켜내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