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식처가 만석이 되었을 때

씁쓸하고도 기쁜 안녕

by 서이안

꽃이 피기 시작한 주말 오후. 올 겨울 내내 책을 읽고 글을 쓰러 가던 산골짜기의 고즈넉한 한옥 카페를 찾았다. 하지만 늘 여유롭던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빼곡했고, 좁은 골목까지 만석을 알리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웅성거리는 카페 안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핸들을 돌려 언덕을 내려왔다.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 솔직히 말하면 아주 조금 배가 아팠다. 나만 아는 비밀 기지를 통째로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입술이 삐죽여졌다. 유치하지만, 나만 독점하고 싶었던 그 조용한 온기가 세상에 까발려진 것 같아 못내 섭섭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묘한 상실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가도 늘 세심하게 머리를 매만져주던 동네 미용실도, 주말마다 혼자 피자를 먹으며 사장님의 정직한 재료에 감탄하던 작은 식당도, 어느 순간 SNS를 타더니 길게 줄을 서야 하는 핫플레이스가 되어버렸다.


내가 겨울 내내 그 한옥 카페에 머물렀던 건 커피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잔이 비어갈 때쯤 슬며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더 채워주고, 곁들여 먹으라며 과일을 예쁘게 깎아 내어 주던 사장님의 조용한 환대가 좋았다. 그 다독임들을 나만 아는 자리에서 혼자 받아왔다.


하지만 옹졸했던 마음도 잠시, 언덕을 완전히 내려왔을 때쯤 그 섭섭함은 이내 옅은 미소와 뭉클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묵묵히 타인을 향해 온기를 내어주던 사람들이 결국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제법 통쾌하고 뿌듯한 일이니까.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것들은 결국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된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커피 한 잔, 피자 한 판, 짧은 머리칼을 매개로 가벼운 안부를 묻는 이웃이었다. 하지만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던 그 느슨하고 따뜻한 관계가 내게는 제법 든든한 등받이였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요즘 장사가 잘 되어서 제가 다 기쁘네요!" 하고 넉살 좋게 축하를 건넬 만큼 나는 살가운 사람이 못 된다. 붐비는 틈바구니에 끼어 커피를 마실 만큼 사교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아마 꽤 오랫동안 그 카페에 다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와 그 공간이 맺었던 작고 내밀한 관계는 딱 지난겨울까지의 '시절인연'으로 막을 내렸다.


나만 알던 조용한 아지트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여전히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기꺼이 백미러에서 시선을 거둔다. 나의 외로운 시간을 지켜주었던 그 친절한 이웃들의 공간이, 앞으로도 내내 만석이기를. 그리고 나는, 그 공간이 만석이 되기 전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었던 그 고요한 시간들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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