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닦인 식탁에서 완벽한 위로를 보았다

단골 만둣집 사장님의 단짠 상담소

by 서이안

도서관과 피아노 연습실, 그리고 독립 영화관. 주말이면 쳇바퀴처럼 도는 내 조촐한 외출 길, 종종 들르는 낡은 만둣집이 하나 있다. 간판 색이 바랜 지 오래인 그곳엔 매일 밤 10시까지 홀로 불판을 지키는, 여장부 같은 사장님이 계신다.


주로 애매한 토요일 오후 3시쯤 그곳의 문을 민다. 구석의 1인석에 짐을 내려놓으려 하면, 바쁘게 만두를 빚던 사장님이 툭 한마디를 던진다.


"손님 없는 시간이니께 편하게 넓은 데 앉으셔유."


구수한 사투리에 등 떠밀려 앉은 4인석. 한여름이면 사장님은 말없이 선풍기 방향을 내 쪽으로 슬쩍 돌려놓아 주신다.


사실 식탁 위에는 앞선 손님이 남기고 간 끈적임이 덜 닦여 있고, 내어주신 앞접시에는 설거지 물자국이 선명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 물자국과 덜 닦인 식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평일 내내 교실에서 서른 명의 아이들에게 "줄 맞춰라", "쓰레기 잘 버려라" 반듯한 규칙을 쏟아내며 방전된 내게, 이 투박하고 어수선한 공간은 완벽한 해방구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약간 덜 닦인 식탁에 앉아 있으면, 일주일 내내 팽팽하게 조이고 있던 무거운 갑옷이 비로소 스르르 벗겨지는 기분이다.

얼마 전, 늘 그렇듯 3시의 만두를 베어 물고 있을 때였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유, 왜 이렇게 오랜만이여!"


반가운 인사도 잠시, 아주머니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서러운 하소연을 쏟아냈다. 일자리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잘렸다는 것이었다. 일을 못 할 만큼 늙지도 않았는데 억울하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연에, 나는 잠자코 간장을 찍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주방에서 국자를 든 사장님이 아주머니보다 더 핏대를 세우며 성을 냈다.


"아니, 니들은 나이 안 먹을 줄 아냐고 해버리지 그려!"


시원한 호통이었다. 내 일처럼 화를 내주는 그 편파적인 공감에 아주머니의 서러움이 꽤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 사장님의 진짜 내공은 그다음 순간에 빛났다. 불을 줄이고 다가온 사장님이, 아주머니의 어깨를 툭 치며 덧붙였다.


"근데 또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더라구. 사람 쓰는 게 맘 같지 않으니께. 속상해도 참으셔. 더 좋은 자리 날 거여."


순간, 만두를 씹던 나는 속으로 작은 탄성을 질렀다. 내 일처럼 화를 내며 감정의 찌꺼기를 비워내주고는, 다시 딛고 서야 할 현실의 차가운 바닥을 짚어주었다. 넘어진 자리에서 기어코 스스로 무릎을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맵고도 다정하게 등을 다독이면서.


그날 오후,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이 맴도는 허름한 식당 안, 조금 덜 닦인 식탁 위에서.

사장님의 그 매콤하고도 따뜻한 목소리를 반찬 삼아 먹은 만두는 유난히도 속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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