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한 번씩 시골집을 다녀오면 마음에서 느껴지는 맑음이 있다. 일상을 괴롭히던 시끌시끌하고 복잡한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어쩌면 삶의 색은 원래 그런 것인데 너무도 때를 묻히며 굴러가느라 원래의 빛깔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박완서의 에세이는 내가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보내는 날들 같았다.
영양제를 한 알씩 꺼내어 먹듯 에세이를 한 편씩 펼쳐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독서 모임을 위한 발제문을 생각하느라 프롤로그에 있는 제목들을 다시 되새겨 읽었다. 마음이 낸 길, 꿈을 꿀 희망,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사랑의 행로, 환하고도 슬픈 얼굴, 이왕이면 해피엔드. 파트 제목도 그렇고, 하나하나 반짝이는 언어다. 소박하지만 예쁘고 맑은 들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 30대의 삶은 고행이라고 생각하며 버티는 그런 날들을 보내느라, 한동안의 나의 일기는 온통 투쟁기 혹은 고군분투 같다. 아니면 현실 한탄 정도? 박완서 작가의 소박한 일상과 맑은 문장들이 나를 생기롭게 해주었다. 나는 문장을 사랑한다. 아! 나는 일상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작은 깨우침까지 주었다.
나의 인생에도 소소한 일들이지만 값지게 반짝이는 이슬 같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다만, 내가 기억하지 않아 날아가 버린 그 찰나의 아름다움. 그 자그마한 행복들. 사람들은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추구하지만, 행복은 최종적인 삶의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어떤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두고두고 맴돈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 인생의 풍파도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순수한 삶의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다니. 아니면 그 시절이 더 인생을 보는 눈을 바꾸어준 것인지. 예전에는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고도 소박함과 평화로운 글이네 느낀 정도라면, 이제는 내 삶 또한 그럴 수 있기를 지향하고, 작가의 삶과 생각을 엿보는 것이 반갑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더 오염되지 않고 삶의 정수를 지키고 싶다.
오랜만에 나를 편안하고 생기롭게 해주는 책을 만나 반가웠다. 나의 보잘 것 없다 느낀 정신없이 흘러간 일상들도 발제문을 생각하며 다시 꼽아볼 예정이다. 예사로운 삶의 기억들도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나고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이 책의 행운으로 꼽으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