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오랜만에 읽는 문학은, 감동에 감동을 더한다. 어떤 비유도 부족하다. 소설의 장치들과 구성, 은유들, 복선. 이것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표현. 이 모든 것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한때 문학을 사랑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작품에 빠져들었다.
레빈이 농민들과 풀베기를 하며 느꼈던 그 몰입에의 경험을 안나 카레리나를 파고들며 느꼈다. 교육과정 짜기가 싫었던 이유도 한몫하지만, 밤이 깊도록 책을 들춰보며 발제문을 만들고, 문학 강의를 듣는데 몰려드는 그 느낌. 오랜만에 느껴보는 몰입에의 행복. 내가 느끼는 행복은 이런 것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너무도 유명한 표현으로 시작하는 안나 카레니나.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고, 이름이 낯설은데 또 비슷해 한동안은 앞에 인물 설명을 넘겨봐야 했다. 등장인물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안나와 카레닌, 안나와 브론스키, 스테판과 돌리, 레빈과 키티 그들의 가정을 보며 인간과 삶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가 싶어졌다.
스테판과 돌리의 가정이 현실에 많이 있는 오래 지난 결혼생활인 것 같아서 씁쓸했다. 뒤죽박죽인 오블론스키네 집.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아내에게 자신의 부정을 더 잘 속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아내에게 전적으로 잘못했고 그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집안사람들은 거의 모두, 심지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둘도 없는 친구인 보모마저 그의 편이었다.’(1권 23) 돌리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안나마저 돌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득을 하러 오는 것도 뭔가 싶고, 결국 변하지 않는 스테판의 모습은... 달콤한 사랑은 흘러가고 쓰디쓴 삶은 남는다. 돌리가 안나를 보러 가며 하는 결혼과 임신에 관한 상념들은 너무도 공감이 가서 더 쓰디썼다. 그러다가 돌리가 안나와 이야기를 한 후 자신의 삶에 대한 매력과 광채를 느낄 때 돌리는 자기만의 행복을 발견했다. 안나를 보며 현실적인 자신의 선택의 가치를 느낀 것이리라. 그래도 돌리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데, 비슷한 상황이 되면 아마 나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 현실에 있는 그저 삶을 함께 이어나가는 많은 부부의 이야기일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키티와 레빈도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스테판이 사랑에 빠진 레빈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줌마가 된 나와 친구들이 미혼 20대 여자들에게 농담처럼 갖는 마음과 비슷했다.
“자네 앞엔 모든 것이 펼쳐져 있어.” “그럼, 자네에겐 모든 것이 이미 다 지나갔다는 건가?”
“아니, 지나간 건 아니라 해도..... 어쨌든 자네에겐 미래가 있고, 나에겐 현재가 있지. 그나마 현재도 이렇게 복잡하고.”(1권 88)
길고 긴 결혼생활 이후에도 사랑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참 어렵다. 현실이 되어버린 사랑에는 낭만도 끌림도 사그라들고, 그 빈자리에는 다른 형태의 애정 혹은 애증이 자리 잡는 것 같다. 키티와 레빈의 10년 후는 그래도 조금 다른 형태의 것이길 바란다. 레빈과 키티의 성장하는 관계가 후속편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들은 결혼생활 10년 20년 후에도 스티바와 돌리 같은 관계로 가지 않고, 그들의 성장을 찾아갈 것이라고 믿어본다.
모스크바로 오는 안나. 브론스키를 만나게 되는 기차역. 안나에게 끌리는 브론스키와 그를 향하는 안나는 오래도록 생각이 날 것 같다. 안나의 매력과 브론스키와의 끌림이 지면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전해져오고 설레지만, 안나처럼 열정 혹은 욕망이 가득한 사랑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안나가 자신의 모든 것, 아들을 포함하여, 을 버릴 자신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책 없이 욕망을 따랐다고 생각했다. 러시아 상류층에서 불륜은 흔한 일이었고 체면을 손상 시키지 않는다면 묵인되는 분위기라는 사회상을 생각하니, 안나는 위선적이거나 이중적이지 못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나이도 많고, 사랑하지도 않고, 잘 맞지도 않은 남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중이라면, 브론스키가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무엇보다 난 사람들이 내가 무언가를 입증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아무것도 입증하고 싶지 않아요. 난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에요. 나 자신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불행을 끼치고 싶지 않아요.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어요.”3권 143 이 부분을 읽으며 안나에 대해 가졌던 그 시대 세상의 눈을 나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안나는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녀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따랐을 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솔직한 선택에 너무 많은 비난과 질타가 이어졌다. 스테판이 여기저기 바람을 피우고 다닐 때 사람들이 대하던 것과는 또 완연히 다르다는 것도, 똑같은 당사자인데 안나는 거의 매장당하는 분위기에도 브론스키(물론 브론스키는 가정이 없는 상태였지만)는 별다른 제약 없이 거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좀 슬펐다. 여자의 삶이란...
안나의 남편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동정심이 일었다. 안나가 카레닌의 외모에 대해 혐오를 느낄 때는 카레닌이 한편으로 가엾기도 했다. 아내의 정부인 브론스키와 집에서 마주칠 때 마음이 어떠했을지. 카레닌이 안나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카레닌이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알고 나서 보인 태도는 처음에는 본인의 명예만을 중요시 여긴 것이라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가 떠나려는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보여서 안타까웠다. 카레닌도 자신의 마음에 더 솔직해지고 안나에게 표현을 할 줄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카레닌이 안나를 용서했다고 했지만, 그것이 진짜 용서이며, 용서하는 마음이 가능할까? 만약 진짜 용서했다면 안나의 생명력을 꺼뜨리기 전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야 했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시작부터 불행의 문 하나를 열고 시작하는데 안나는 자신의 선택을 감당할 의지가 부족했다. 늘 자기가 버리고 온 것을 마음에 품고 있으며, 자신 스스로 자각하면서도 브론스키에게 집착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나의 외적인 매력들이 안나를 빛나게 했는데, 불행 속에서 허덕이는 중에도 외적인 매력만이 강조되는 것도 처절하고 안타까웠다. 브론스키가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브론스키는 혼자 타오르는 불덩이 같다. 안나에 대한 사랑도 불과 같아서 그녀가 타오르고 사그라지게 했다. 마지막 돌이킬 수 없는 순간 후회하는 안나의 안타까운 마지막이 레빈과 대비되어 톨스토이가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 같다.
제목은 안나 카레니나이지만 레빈이 주인공인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 안나가 자살을 하고 나서도 레빈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안나와 대비되기도 하면서, 또 브론스키와 대비되는 인물이 레빈이다. 안나는 죽음을 향하는데, 레빈은 형의 죽음을 통해서 성찰하고 아들의 탄생을 맞이하며 새롭게 또 태어난다. 레빈은 끊임없이 사유한다. 키티와의 관계에서 사랑에 대해, 형의 죽음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농장 일을 하면서 농민과 사회에 대해. 아이를 낳으면서 종교에 대해. 레빈이 나에게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3권560
누구나 행복을 찾는다. 그리고 추구하는 삶의 의미는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 또한 다양하다. 내가 선택한 삶의 의미에서 행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안나와 레빈에게서 배운 점이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단순하게 삶의 정수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