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던 나의 어린이를 꺼내다

어린왕자

by 서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독후감을 깜빡한 채 주말을 보내고 말았다. 아침에 모임 공지 메시지를 본 순간에야 떠오르는 나를 보며, 어린왕자에서 나온 소행성의 어떤 어른들과 닮아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해할 수 없고 부끄럽기까지 했던 그 어른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어린왕자를 읽었다. 한때는 가장 좋아했던 책으로 꼽았고, 여기 나왔던 문구들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었는데 잠깐 울적해지기도 했다. 진짜 어른은 되지 못하고 다른 의미에서 너무도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처음에 양 이야기를 읽으면서였다. 나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해야 하고 바빠 죽겠는데, 옆에서 아이가 자꾸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기껏 그려주었더니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되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였을지 알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버럭 화내고 아이에게 조목조목 지금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하곤 무시했을 것 같다. 아. 어린이 마음. 내 안에 있던 어린이 마음은 어디로 휘발되어 버렸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그리던 모습과는 좀 다른 어른이어서 나에 대한 실망감이 밀려온다. 사실 이러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현실을 사는 중이었는데, 다시 읽은 어린왕자가 묻어둔 마음을 꺼냈다.


어린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참 즐거웠다. 그들의 반짝이는 생각과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예뻤고, 행복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도 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임을 알았고,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 어린왕자를 읽었을 때, 양을 그려달라던 아이의 마음과 네모 상자를 보고 만족해하던 모습이 참 창의적이고 순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이의 이런 해맑음을 보아주지 못하고 짜증이 치밀어오르다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허둥대며 일상을 유지하느라 관계가 틀어지고 마음이 상한다면 유지된 일상이 무슨 소용일까. 나는 가로등 켜는 어른으로 살고 있었다. 삶의 무게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어진 소임을 다하느라 피로에 시달리지만, 또다시 일상을 달린다. 그러다가 반성적인 나로 돌아오면 술꾼이 된다. 술을 마시지 않지만 부끄러워 반성하고 또 부끄럽고 반성을 반복하는 나.


이번에 읽을 때는 가장 깊이 있게 다가왔던 것은 관계이다. 그래서 여우의 말과 모습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여우가 했던 이야기들을 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노력이 필요하고 책임이 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마치 장미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장미꽃처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서투르다는 자각도 다시 들었다. 여우와 어린왕자가 서로를 길들여가는 과정이 모두 소중했다. 여우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와서 박힌다. 어린왕자가 여우를 두고 장미에게 가면서도 얻은 게 없다고 했을 때, ‘얻은 게 있지, 저 밀밭의 색깔이 있으니까.’ 아! 역시, 여우처럼 살아야 한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늘 간직하고 살던 이야기였는데, 다시 마음에 새긴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책들은 다시 읽힌다. 어릴 때는 그저 새롭고 재미있고, 다소 이상한 이야기였었고, 조금 더 커서는 심오한 이야기였었고, 지금은 너무도 명료하게 알려주는 본질 같다. 할머니가 되어도 어린왕자의 감성들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그리고 사막에 불시착해서 이 이야기를 쓴 생텍쥐페리의 발상도 너무나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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