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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오버로드] 영리하게 깨트린 밸런스

by 서인택

게임에서 밸런스란 많은 곳에서 존재합니다. 우선 캐릭터끼리, 혹은 직업끼리의 공평성을 잘 이루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화폐가 순환되는 경제적 요소에도 있습니다. 만약 캐릭터가 점점 강해지는 구성을 가졌다면 성장에 관한 밸런스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게임 내 밸런스는 다양한 곳에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저 스스로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지 않게 하려고, 혹은 게임을 진행하는 데 있어 매끄럽지 않은 경험을 피하기 위해서 등등입니다.


화면 캡처 2024-12-28 044809.png [메이플 스토리]에서 레벨별로 요구하는 경험치


그러나 그 밸런스가 언제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개발자의 인간적인 실수일 수도 있고, 우연히 어느 공략이 먼저 유행하면서 다른 선택지가 외면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발자도 예상 못 한 조합을 유저가 찾아내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발자가 밸런스를 의도적으로 깨트리는 상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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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에 다룰 게임인 [유니콘 오버로드](이하 유니콘)에서 그러한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유니콘]에서 등장하는 직업은 총 42개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 종류가 많다면 직업 간 다소 균형이 망가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유니콘]은 그걸 방치만 하지 않고 게임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목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유니콘]에서 직업 밸런스를 어떻게 깨트렸는지, 그걸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트레일러 캡쳐.png 캐릭터도 매우 많다




눈에 띄는 문제를 덮어두기

주인공이 해야 할 일은 가족의 원수를 갚고,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목적도 명확한 만큼 유저가 최종 도달 지점에 집중하기 편합니다. 전투도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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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납득하기 쉬운 악당


하지만 게임을 좀 진행하다 보면 수많은 정보가 점차 풀리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스테이지가 시작하면 유저는 아군 파티를 지휘하여 상대 진영을 함락해야 합니다. 전투 중 캐릭터는 스킬을 자동으로 발동하는데, 그 스킬은 유저가 설정한 조건문에 따라 발동 타이밍이 달라집니다. 이 부분이 유저에게 상당히 복잡하게 다가옵니다. 스킬마다 조건을 2개씩 설정할 수 있고, 그것도 한정 조건과 우선 조건으로 각자 다른 효과를 가집니다. 조건의 종류는 본인이나 상대의 HP, 클래스, 스테이터스 등 너무 다양합니다. 거기에 우선순위까지 정할 수 있고, 이걸 파티와 파티원을 고려하여 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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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코딩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반쯤 포기하고 대충 세팅해도 어찌저찌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에 결과를 미리 알려줘서 전술 짜기 편하고, 전투는 빠르게 스킵 가능합니다. 게임 진행도 막힘없이 풀리는 편이고, 설사 어려운 구간이 오더라도 레벨업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보통 난이도 기준에서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의도적인 밸런스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어려운 요소는 존재하지만, 일단 외면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2024052216114900-EA19D3B45BAF55D608A09004FAB0F9BC.jpg 승패를 쉽게 알려줘서 전투가 매우 편하다




처음엔 쉬워도 점점 어려워지는 난이도

어찌저찌 진행하여 최종 보스를 만나기 직전까지 갔을 때 필자는 아군 파티를 제대로 정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계기가 된 콘텐츠가 2가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아말리아라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투기장 마지막 전투를 진행할 때였습니다. 결투장은 이미 꾸려진 적군 파티를 차례대로 무찌르면서 아말리아에게 도달한 후 승리하면 끝납니다. 그 캐릭터의 성능이 워낙 좋아서 이기는 게 쉽지 않았지만, 사실 의외로 간단한 공략법이 있었습니다. [유니콘]에선 전투가 끝난 후 체력 비율이 가장 높은 파티가 판전승을 가져갑니다. 그래서 아군이 상대의 체력을 아주 조금이라도 줄이고 모든 공격을 회피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스킵하면서 지나쳤던 기본적인 룰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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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꼼수가 통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역대 왕의 묘소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전멸시켜야 클리어로 인정하는 콘텐츠입니다. 상대의 레벨도 높고, 캐릭터 자체도 강한 편인 데다 조합도 좋아서 이기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대 왕의 묘소는 게임의 이해도를 더욱 요구하는 콘텐츠입니다.


2024053023403900-EA19D3B45BAF55D608A09004FAB0F9BC.jpg 조합을 꽤 많이 바꾸고 이겼다


필자는 이때 개발자가 유저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게임 시스템을 더욱 잘 알아가길 바란 것 같았습니다. 이미 필자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게임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자기 파티와 캐릭터를 자세히 살펴봤을 때 필자는 [유니콘]의 캐릭터 밸런스가 의도적으로 망가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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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띄워주는 캐릭터

앞서 언급했듯 각 캐릭터의 스킬은 조건문을 달아서 발동 타이밍이나 대상을 미리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직업인 하이 로드는 래피드 오더라는 개전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전투를 시작할 때 발동하여 아군 전체의 행동 속도를 올려줍니다. 이 때문에 주인공 파티를 짤 땐 초반에 높은 데미지로 몰아붙이는 캐릭터들로 구성해야 좋은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하이 로드 외에도 프린스나 발키리아에게도 성능 좋은 개전 스킬을 가진 직업이 많은데, 보통은 스토리에서도 중요한 캐릭터만 가지는 고유 클래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파티를 짤 때 주연 캐릭터를 위주로 부대를 편성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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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도 래피드 오더를, 발키리아는 방어 능력을 올려주는 개전 스킬을 가지고 있다


만약 캐릭터가 부족하면 용병을 추가로 영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게 파티의 완성도를 높여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만 의외로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필자의 경우 아무리 다시 세팅해도 주인공의 개전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개전 스킬에 동시 발동 제한이란 특성이 있었고, 그것을 몇몇 범용 클래스가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깨트린 균형

고유 클래스 12개 중 개전 스킬을 가진 건 7개입니다. 필자의 경우 보통 난이도를 클리어하는 데 7개의 파티를 운용했으니 각자가 한 파티의 핵심이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때 파티원이 되어줄 범용 클래스 30개 중 개전 스킬을 가진 건 10개입니다. 한 파티 내에서 개전 스킬이 동시에 일어나려는 경우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행동 속도가 빠른 캐릭터의 개전 스킬만 발동되고, 나머지는 제한됩니다. 보통은 고유 클래스 캐릭터의 행동 속도가 빠른 편이라서 별문제 없지만, 범용 클래스인 소드맨과 시프가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화면 캡처 2024-12-28 212913.png 개전 스킬이 있는 직업에 색깔이 칠해져 있다


그들의 행동 속도는 고유 클래스의 개전 스킬을 막아버릴 정도로 너무 빨라서 파티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유저는 소드맨이나 시프 같은 직업을 어떻게든 쓰기 위해 연구하거나, 아예 파티에서 빼버리는 걸 선택해야 합니다.


소드마스터 특징.jpg 소드맨이 클래스 체인지를 하면 소드 마스터가 된다


그나마 시프는 개전 스킬보다 다른 것이 더 성능 좋아서 다른 활용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소드맨은 그렇게 쓰기도 어렵습니다. 우선 스탯 자체가 낮고, 성장 효율도 나쁩니다. 다른 스킬을 활용하자니 파훼 되기도 쉽습니다. 그나마 패치를 통해 나아졌다지만 버려지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연구된 이유도 소드맨 캐릭터인 멜리장드가 인기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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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게 인상적




추천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듯 진영을 움직이며 플레이하는 SRPG는 잘 출시되지 않는 장르입니다. 그중에서 [유니콘]은 완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자동 전투지만 작전 행동을 짜는 등 개성적이며, 각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도 충분히 어필하고 있습니다. 본편 분량도 꽤 많은데 인물끼리 가지는 관계성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기본적으로 SRPG 신규 유저에게 어필하기 좋도록 구성된 작품입니다. PC로는 출시하지 않아서 콘솔이 필수인 점이 가장 아쉽지만, 만약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스위치 등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2024122905170800-EA19D3B45BAF55D608A09004FAB0F9BC.jpg 복잡하지만 익숙해지면 편하다




다음편 예고

[유니콘]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다회차 요소는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습니다. 초회차만으로도 게임을 완전히 즐길 수 있고, 여러 엔딩은 유저에게 부담이 되며,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처럼 작품 분위기가 급변하는 걸 막고 싶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개발사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후속작을 만들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중복된 요소와 새로운 무언가는 필수가 됩니다. 하지만 변화가 너무 크거나, 반대로 아예 없다면 실망하는 유저가 등장합니다. 그 미묘한 진화도 게임의 재미를 담당합니다. [유니콘]이 과감히 포기한 영역은 누군가에게 도전입니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작품은 많이 존재합니다. 필자가 다음에 다룰 게임도 이에 해당합니다. 바로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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