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온다는 뉴스를 보고
‘데데’.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우재가 태어나서 ‘엄마’ 다음으로 두번째로 배운 단어다. ‘데데’는 필리핀 말인 타갈로그어로 젖병이나 우유를 가리키는 말이다. 백일이 갓 지나 처음 만난 라니 이모가 밤낮으로 정성스럽게 입에 물려주는 ‘데데’를 우재는 ‘아빠’보다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온 라니 이모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나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내가 직장을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옮김에 따라 지금은 미국에서 함께 살고 있다. 우재가 지금까지 이토록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아내와 나도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항상 행복한 것은 라니 이모의 공이 크다.
싱가포르에는 라니 이모와 같이 상주하며 집안 일을 도와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흔히 헬퍼나 메이드라고 부르고, 보다 공식적인 용어로는 domestic worker라고 하는 이 사람들은 인근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많은 싱가포르에서는 많은 가족들이 domestic worker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싱가포르, 홍콩, 중동 등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외국 땅을 처음 밟는 스무살을 갓 넘은 어린 처녀부터, 이미 수년 간 여러 나라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우리 라니 이모 같은 사람들도 있다.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 부부도 한번 헬퍼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외국 땅에서 나 말고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갓난아기를 키워야 하는 아내에게 도움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런 결심을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된 데에는 헬퍼 제도가 사회 넓게 자리잡은 싱가포르의 분위기 덕분이 컸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헬퍼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헬퍼를 고용하는 데 비교적 경제적인 부담이 크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어느 한쪽에 의한 강요 없이 싱가포르와 필리핀에 있는 많은 가족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가 아닐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필리핀에서 온 가사도우미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이 조심스러운 시도가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는 일 없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도와주는 일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큰 사회적 문제가 된 저출산을 해결하고 좋은 이웃나라들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쌓으며 그 곳의 가족들에게도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쓸 글들을 통해 라니 이모와 함께 쌓은 따뜻하고 즐거운 추억들을 나누면서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 또한 언젠가 라니 이모는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우재는 무럭무럭 자라 글은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자신을 키워준 라니 이모는 까맣게 잊게 되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데데도 컵에 한잔 따라 마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