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데려가실래요? 강 건너에서 온 아줌마도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겠다고 했어요.”
“저 지저분한 작은 동물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나이가 됐잖아? 넌 더 커야겠다.”
“얘는 아츠예요. 얘 좀 봐주실래요, 에츠코 아줌마? 얘는 아츠예요.”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기억한다.
‘가만히 있으라’고만 반복하던 방송.
물이 차올라 오는 선실, 수압에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던
새끼 고양이가 할퀸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피.
아이의 옷가지를 찢어 감싼 다기들.
과적한 화물이 선창의 벽으로 돌진한다.
옆으로 기울어져 가라앉는 배.
갈대에 걸렸다가 풀려나 떠내려가는 상자.
물 위에 보이는 것은 상자의 작은 귀퉁이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