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화씨 450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국 Oct 23. 2021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도망쳐, 마리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 도쿄에서 온 사치코와 그녀의 어린 딸 마리코는 황무지 끝 강가에 홀로 서 있는 오두막에 산다. 사치코는 머지않아 미국인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마리코는 엄마와 엄마의 친구 에츠코에게 어떤 여자가 자기를 찾아와 강 너머로 데려가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치코에 따르면 그 여자는 공습이 이어지던 도쿄에서 갓난아이를 물속으로 밀어 넣던 굶주린 여자의 텅 빈 눈빛과 마주친 후 마리코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인물이라고 한다.

  물에 대한 공포, 손에 대한 공포, 버림에 대한 공포로 위축되어가는 마리코가 유일하게 애착을 갖는 대상은 고양이들이다. 도쿄에서 함께 온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들에게 마리코는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준다. 아츠, 수지, 미 짱 같은 이름을 가진 새끼 고양이들의 운명은 사치코의 손에 달려 있다. 사치코가 애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날 때 고양이들도 함께 갈 수 있을지는 마리코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사치코의 대답에 마리코는 불안해한다. 그들이 버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마리코는 오두막을 찾은 에츠코에게 부탁한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데려가실래요? 강 건너에서 온 아줌마도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겠다고 했어요.”     


  소설의 절정은 사치코가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며 짐을 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골판지 상자에 넣은 다기가 흔들거리자 사치코는 아이의 겨울 옷가지들을 찢어서 다기를 감싼다. 마음대로 잘 포장되지 않는 짐들 때문에 성가셔하는 사치코에게 마리코는 고양이 아츠를 안은 채 묻는다. “그랬잖아, 엄마. 기억 안 나? 데리고 가도 좋다고 엄마가 그랬어.” 짜증스러운 기미가 사치코의 얼굴을 스친다. 그저 동물에 지나지 않는 저 고양이들에게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마리코를 다그친다.     


“저 지저분한 작은 동물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나이가 됐잖아? 넌 더 커야겠다.”     


  사치코는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집 구석으로 향한다. 빈 상자에 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넣고는 마리코가 껴안고 있던 아츠에게까지 손을 뻗는다. 마리코는 이를 지켜보던 에츠코에게 애원하듯 말한다.     


“얘는 아츠예요. 얘 좀 봐주실래요, 에츠코 아줌마? 얘는 아츠예요.”     


  고양이들을 상자에 넣은 사치코는 강가로 향한다. 쫓아가려는 마리코에게 사치코는 말한다. “내 말대로 해. 여기 있어.” 그들을 따라가던 에츠코 또한 마리코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마리코는 에츠코를 잠시 쳐다본 후 집 밖으로 달려 나간다.

  강가에서 사치코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꺼내어 물속에 집어넣는다. 조금 뒤 꺼내어 확인한 고양이는 아직 살아 있다. 사치코의 손목에는 고양이가 할퀴어 낸 상처 자국이 벌겋다. 사치코는 상자를 통째로 강물에 빠뜨린다. 물 위로 떠오르지 않게 두 손으로 상자를 꾹 누른다. 물이 차오를 때까지 상자를 붙잡고 있다가 물속으로 힘껏 민다. 상자는 물살에 쓸려 빠르게 빙글거리며 하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강둑에 나타난 마리코가 상자를 따라 달린다. 물속에서 떠돌던 상자는 갈대에 걸렸다가 이윽고 풀려나 줄곧 아래로 떠내려간다. 멈춰 선 마리코의 눈에 보이는 것은 물 위로 드러난 상자의 작은 귀퉁이뿐이다.     


가만히 있으라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기억한다.
‘가만히 있으라’고만 반복하던 방송.
물이 차올라 오는 선실, 수압에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던
새끼 고양이가 할퀸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피.
아이의 옷가지를 찢어 감싼 다기들.
과적한 화물이 선창의 벽으로 돌진한다.
옆으로 기울어져 가라앉는 배.
갈대에 걸렸다가 풀려나 떠내려가는 상자.
물 위에 보이는 것은 상자의 작은 귀퉁이뿐.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마리코는 도쿄에서 데리고 있던 고양이가 거미를 먹던 것을 기억한다. 그 고양이는 사치코와 마리코가 나가사키로 떠나기 전날 사라졌다. 그 고양이가 어디에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리코는 오두막을 기어 다니는 거미를 응시하며 묻는다. “내가 거미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마리코는 고양이가 되고 싶어 한다. 고양이가 된다면 도망쳐서도 어디에선가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코는 아츠다. 새끼 고양이다. 새끼 고양이의 생사는 어른인 사치코에게 달려 있다. 사치코가 아츠를 잡으려 손을 뻗을 때 마리코가 에츠코에게 건넨 말이 되울려 온다.     


  “얘는 아츠예요. 얘 좀 봐주실래요, 에츠코 아줌마? 얘는 아츠예요.”     


  누군가 마리코에게 아빠의 직업을 물었을 때, 마리코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아버진 동물원 사육사야.” 마리코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따뜻한 옷가지에 둘러싸인 채, 어른으로 자라길 원했으리라.

  그래서 어린 나이의 죽음이 몰고 오는 슬픔은 비할 곳이 없다. 마리코의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주세요”는 도망칠 곳이 없는 어린아이의 간절한 마음이다. 우리는 왜 그것조차도 되어주지 못하는가? 우리가 그들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들이 이곳을 떠나서라도 어디선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야 하는 걸까. 더러운 물속에서도, 아직 살아 있던 그 고양이들처럼. 상자가 강물을 따라 흘러가 어느 햇살 좋은 따뜻한 강가에 안착했기를. 거기서 아츠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세월호의 아이들이 어딘가에서는 스물셋, 스물네 살 생일을 맞이하기를.



# 본 글은 2020년 2월 29일 304낭독회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이 얼음의 세상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