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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Mar 18. 2024

우리가 누리는 특권

전공의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이로부터

  나는 지금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 내과 조교수로 근무 중인 젊은 의사다. 2월 초, 우리 의국에서는 올해 들어올 내과 전공의 1년차들을 대상으로 각 과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우연히 내가 그 중 가장 첫 시간을 맡게 되어, 나는 맡은 강의를 마친 후 내과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그동안 스스로 느낀 것을 짧게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빠듯하였지만 나는 앞으로 함께 지낼 이들의 이름을 외우려 질의응답을 가지는 중간 중간에 이름들을 물어보았다.



  내과 의사가 되고부터 후배들에게 종종 해 준 말이 있다. 비록 힘들었지만 수련의로서 보낸 내과 전공의 시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전공의 수련이 마무리될 즈음, 그동안 보았던 환자의 수와 내가 선언하고 서명한 사망진단서의 숫자를 헤아려 본 일이 있다. 그때까지 나는 약 1600명의 환자를 퇴원시켰고 115명의 사망진단서를 썼었다. 그 중 어느 한 분 만만한 환자는 없었던 것 같다. 내과 전공의는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을 주로 보게 되기에 환자들은 최악의 상태에서 나를 처음 만나고 보호자분들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내가 받은 수련이란 이렇게 시작한 만남이 환자분이 좋아져서 퇴원하거나, 혹은 지난한 고생 끝에 임종이라는 이별을 맞이하는 것의 천수백번 반복이었다.



  그 시간들은 내게는 치열했던 시간이었고, 나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의료 지식과 기술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직업과 역사를 가진, 다양한 나이대의 환자들이 침상에서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병원 바깥에서는 세상의 일원으로써 살아가는 이들이 “김OO 환자분”으로 명함이 바뀐 채 우리를 기다린다. 그들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태, 그들만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구한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늘 전율을 느꼈다. 나의 직업으로써, 나의 지식과 행동과 대화로써 내 앞의 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손을 내밀어 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오랜 교육과 수련 끝에 얻은 이 자격으로 행사하는 바로 이 힘, 이 권리야말로 특권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이번 의대 증원 사태 – 전공의 사직 사태 – 의 한가운데서 대학병원의 젊은 교수로 일하며 소위 ‘착한 일’만 하고 있다. 열심히 당직을 서고 환자들을 입원시키며 이전에는 인턴 선생님, 전공의 선생님, 전임의 선생님이 나눠서 하던 일을 지금은 혼자서 하고 있다. 국민들은 아마 우리가 환자 곁을 지키기를 바랄 것이고, 정부도 마찬가지겠으나 우리 동료들, 전공의들, 그리고 의대생들은 대학 교수들이 잠자코 일만 하고 있는 것이 분명 불만일 것이다. 언젠가 대학 교수들도 단체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에 나선다면 나 또한 그에 따라야 하겠지만, 양심에 따른 글을 한 편 기록해두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겨지고 혹시나 누군가 그것을 알아준다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바쁜 와중에 그나마 기사나 댓글들을 읽어볼 수 있는 곳은 병동과 내시경실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다. 아무래도 의사들의 동향이나 입장 같은 것은 자연히 귀에 들어오다 보니 내가 찾아서 보는 것은 정부의 입장이나 소위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나 댓글들이다. 거기에는 의사를 비판하는 많은 지점들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시작점 중 하나에 바로 의사들이 가진 특권의식이라는 게 있다. 기사 제목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경실련 “불법행동해도 처벌 없다는 의사 특권의식 깨야” – 조선일보 2024.03.05


특권의식 보기 불편하다… 의사 집단행동에 여론 싸늘 – 한국경제 2024.02.18


의사들의 막말 퍼레이드… 무서울 게 없는 ‘무서운 특권의식’ – 한국일보 2024.02.23



  요약하자면, 여론은 의사들이 특권의식에 매몰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이 생각했을 때 의사들은 스스로가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여론이며, 아마도 국민들 중 많은 수가 의사들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여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의사들에게 그런 특권의식이 있을까? 나는 내부자이기에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에 대해 짧게나마 짚어보려고 한다.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상사와 동료에게 인정받고, 가족에게 인정받고, 후배에게 존경받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보상이자 삶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 존경이나 인정은 어떤 마음의 움직임이 있지 않고서야 쉬이 줄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전문가에게 인정이란 것은, 그의 직업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바치는 헌신과 전문성, 윤리성이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닿았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오랜 교육과 수련에 따른 충분한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다. 물론 그런 심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위 ‘가방끈’이 길다고 항상 그만한 보상을 받는 것이던가? 경제적 보상이란 시장 경제의 원리와 정부의 정책, 과의 인기, 해당 의사의 희소성, 짊어지는 위험 부담, 그리고 운이나 타이밍 같은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서 결정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의사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리라. 물론 의사에게는 의료수가가 경제적 보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것의 적절한 수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배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 길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공의 수련을 포기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전문성을 갈고 닦아 우리들의 필수의료를 책임질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졌어야 할 보상이 그 길을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보상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는 따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의사들은 과연 법적으로도 특권적인 존재냐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의사들 중에서도 범죄자는 많으며, 처벌받는 이들 또한 많다. 또한 의사는 의료인에 해당하므로 의료법이라는 특수한 법률로 인하여 더욱 높은 수준의 준법의식이 요구된다. 이를 어긴다면 면허정지나 면허취소와 같은 치명적인 처벌 또한 가해진다. 특권의식 또한 마찬가지다. 스스로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특권의식이라면, 그것은 버려야 마땅한 마음가짐이다. 만약 의사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위와 같은 마음가짐이 마음 한 켠에 도사리고 있었다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법적으로도 특별한 대우를 바랐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반성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전공의들의 사직이 특권의식의 발로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대학교수들이 사직한다고 입장을 모아서 그것이 실제로 진행되더라도 그것이 특권의식의 발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단체로 휴학한 것 또한 특권의식의 발로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들이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되어 돌아올 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변해가는 의료환경이 그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를 생각하였을 때 지금이라도 더 이상 교육받는/수련받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어떠한가?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병원 업무는 앞으로 얼마나 계속 힘들까. 학생이 2000명이나 늘어나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은 비좁은데, 스케줄도 빠듯한데 실습생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경제적 보상은 포기한 채 명예와 학생들, 환자들로부터 받는 존중을 삶의 낙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조차 과로와 모멸감에 사직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환자의 곁을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병원에 있지 않다고 해서 환자를 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말마따나 전문병원의 역할을 늘릴 수도 있다. 대학병원에서만 항암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로 보는 대장 용종, 대장암 환자나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도 특수 클리닉을 세우면 더 잘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환자를 보고 싶어서 임상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보나, 다른 곳에서 보나 우리는 언제나 환자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전환이 어디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일까? 우리가 대학병원을 떠난다면 입원해 있는 환자들, 외래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전문의를 키우는 대학병원이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의 의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마음일진데 과연 환자의 곁을 지키라고 명령만 내리는 이들은 환자들의, 의사들의, 국민의 입장에 서서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누리는 특권이란 곧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힘이 있다는 것, 그것뿐이다. 우리는 특권의식은 버리고, 다른 특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또다른 특권을 가진 이들이 있다. 지금의 진흙탕에서 우리를 건져줄 힘이 있는 이들. 여전한 권위의 말들과 무서운 언어로 의사들을 몰아붙이는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여러 대표자들. 어느 쪽이 힘을 가지고 있는 지는 스스로가 알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 지금부터라도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지금 환자들과 의사들은 모두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2월 초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의를 듣던 예비 내과 1년차들은, 내게 의학과 생활에 대한 질문이 넘쳐나던 그들은, 이제 소식도 전해 듣기가 어렵다. 부디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나와 함께 환자를 보러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권진규 -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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