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방식에 의구심을 갖자, 그는 어필했다. 호소의 방식이 슬퍼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다잡았다.
비난에 대한 두려움은 때론 존재(혹은 그 방식)를 부정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각인하려고 발버둥 치게 만든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가가는 족족 나의 것이 되는 시기가 있었다. 그 당연함이 끊어지는 순간 당황했다. 단절은 자연스럽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여전히 욕구가 강렬하기에, ‘나중에 앎’을 성숙함이라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저 나는 그랬고, 이렇다. 몰랐던 것을 하나 더 알았을 뿐.
지금까지의 시간은 파도치는 곡선의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지금은 다가올 진폭이 균일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