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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서진 Mar 25. 2019

취약성의 숨은 힘

Vulneralbility / it's enough, I'm ENOUGH

뜻밖의 책을 읽고 조금 더 붙잡고자 쓰는 글 [마음가면, 브레네 브라운 지음, 더 퀘스트 출판, 2016 ] 




1. 벌거벗겨진다는 것 


"흥미로운 스피치를 발견했어요. 신뢰와 연결되는 바로 그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벌써 몇년이 훌쩍지나기전, 쿠(https://brunch.co.kr/@giewookkoo#articles)의 흥미로운 탐구가 찾아낸 ted 비디오를 꽤 인상깊게 보았다. 브레네 브라운(https://www.ted.com/talks/brene_brown_on_vulnerability?)박사의 취약성에 대한 스피치 영상이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의 울림을 주었는지 현재까지 거의 4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심에는 어떻게 취약해지지 않을것인가에 대한 처세가 아니라 취약함을 인정하고 어떻게 전심으로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용기(courage)'가 있었다. 


자신이 취약하지 않다는 환상은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진짜 보호막을 약화시킨다  

좀처럼 출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생각은 타인들에게 발가벗겨지고, 건전한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반응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치심, 나아가 자존감에 대한 무한 반복 회의론을 만들어내는 효과같은 것들이지 않을까 싶다. 요약하면, 내가 그 대표적인 사람일 수 있다. 자발적으로 이렇게 열람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지금, 스스로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결단을 하게 된 것인가를 돌아볼 때, 나의 역사적인 내적갈등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2. 온마음을 다해 사는 삶


브레네 브라운은 이런 취약함의 이름 뒤에 숨은 '수치심(shame)'과 그로 인해 우리가 가지게 되는 '가면'일지 '갑옷'일지를 비유로 사용하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곧 우리 자신들의 가치, 우리 존재의 소중함을 평가하거나 저울질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번 정리해 준다. 다들 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좋을 때 나빠질 것을 상상하는 것처럼 평가에 대한 수치심과 두려움은 습관처럼 피부처럼 우리의 삶과 강하게 유착되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취약성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이되었다. 세상에 취약성 연구자라니, 뜬금없지만 너무 공감되는 것은 나만의 일인가. 그녀의 연구에 의하면, 더 구체적으로 그녀가 실제로 취약성 연구를 위하며 인터뷰한 사람들에 의하면 수치심이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인터뷰 대상자 대부분이 유사한 수치심과 취약성의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우리는 참 독특하면서도 서로 닮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이 인간이라는 알다가도 모를 존재가 더 사랑스럽지 않은가 싶기도하다. 


그녀가 제시하는 결론은 '온마음을 다하는 삶(wholehearted life)'이다. 취약성은 결국 취약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나서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정작 그 두려움 속에는 '끊어지고 싶지 않음', 즉 '연결(connect)'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구분'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수치심과 취약성이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느낌과 실패의 혼동, 감정과 책임의 혼동, 취약성과 나약함의 혼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가가 아니라, 우리가 취약성을 얼마나 인정하는가를 통하여 전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니가 부족해서 그래'의 틀에서 벗어나 '너는 충분해'로 이동하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에서 '나는 충분해'로 이동하는 것이다. 



브레네 브라운의 연구에 의하여 수치심은 연결, 관계의 끊어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이 수치심이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고,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잠식한다고 한다. 매순간, 모두에게 취약성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녀가 인터뷰 대상자들에게서 발견한 것 중에서 인간관계가 깊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낸 것은 수치심 극복에 매우 도움이 되는 내용인데,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계선을 정해놓고 잘 시키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취약성을 끌어안으라고 하는 것은 경계를 넘어가는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취약성을 드러내보이지 않으면 친밀감도 형성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취약성이 용기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그녀는 정리해 주고 있다. 용기를 내서 나는 충분하다고 인정해 보라는 것이다. 



3. 작은 시도, 피드백


하루의 삶을 성찰해보기만 해도 취약해지는 대신 화를 내는 것이 더 익숙한 나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단기적인 좌절을 불러온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단기적인 것이다. 우리는 또 연습할 수 있고, 다르게 해 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어떻게 할지 선택할 수 있다. 


평가하는데는 비중을 두어왔지만, 가치있는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 그것을 이끌어내는 일에는 너도 나도 부담과 불편을 느낀다. '건강한 피드백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나아가게 하는 법을 모르거나 껄끄러운 대화를 나누는데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브레네 브라운의 덧붙임은 조직에 속하여 리더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공감되는 경험적 사실일 것이다. 


운동선수로 뛰었던 사람들을 본받아 보자는 그녀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있다. "그들은 승리만이 아니라 패배에도 익숙하다. 그들은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안다." 


전진을 위하여 피드백을 시도해 보자. 내가 받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을 상대방에게도 주지 않으면 된다. 다만 조금 더 받고싶을만한 방식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도를 해 보는 것이다. 브레네 브라운의 구체적인 제안은 이것이다.  


첫째, 같은 방향으로 앉기 : 

같은 방향으로 앉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습관적으로 늘 우리들 사이엔 테이블이 있건, 중간에 존재하는 무엇이 있었던듯 하다. 구분하는 대신에 '같이'와 '함께'의 공간을 보여주고, 그렇게 앉는 행동에 서 도움의 의지가 몸으로 표현되고 전달된다. 


둘째, 불편을 표준화하기 : 

우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평가는 상대방을 나와는 아무상관 없고, 쓸모없고, 형편없는 '피평가자로서의 타자'로만 덩그러니 남겨지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적어도 피드백을 할 때는 '저에게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 부분에 그것이 있다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라는 식의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 그 불편을 '너의 잘못'이 아닌 '나의 취약함'으로 끌어안고, 너만의 일이 아닌(너에게만 어려움이 아닌) 보편적인 불편으로 드러내 주는 것, 그로서 상대가 일어날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여기서 생겨난다. 


 공감은 치료자와 부상자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대등한 관계에서 생겨난다. 
우리 자신의 불행을 잘 알아야 타인의 불행에 함께 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니는 공통성을 인식할 때, 공감은 진짜가 된다. 

                                                                                                                Pema Chodron 

셋째, 깊은 관심드러내기 

여기서 다시 한번 놀란다. 우리는 일상의 관계속에서 나름의 피드백도 대화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양새도 여럿 보게 된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한번 복기해보자. 나는 그에게 얼마나 호기심어린 태도를 취했고, 관심을 가졌던가 말이다. 상대를 도와주겠다는 적극적인 관심이 아니더라도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궁금함과 호기심을 가졌던가.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피드백이지 않았을까.  



4. 온마음과 진정성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실되고 인간적으로 대할 때,
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곧 신(God)이다.   

                                                                                                             Martin Buber


우리가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다. 또 그래야 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온마음을 다해 살기를 다짐해도 우리를 둘러싼 변화 환경이 그다지 호락호락하지많은 않아서 해를거듭할수록 난처함은 줄어들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저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삶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과연 도움되는 것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분명 브레네 브라운의 제안처럼 '온 마음을 다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할 일말의 여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좀 더 본질적으로 내가 나의 온 삶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진정성(existing wholly by the laws of its own being", Erikson)과 맞닿은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나와 그의, 그리고 우리의 연결이 어디서 일어날 수 있는가. 진실되고, 마음을 다하는 거기서이지 않을까 말이다. 



5. 지금, 그리고 여기


온 마음을 다하는 삶에 대하여 라이프 대하드라마를 상상하기에는 행동의 계획이랄지, 상상력이랄지 아무튼 호흡이 너무 길다. 그러나 내 삶을 구성하는 나의 본질을 생각하면, 지금 나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총체적인 에센스이자 의미는 오늘 하루의 삶에 투영될 수 밖에 없다. 


시작은 그 취약성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는 것에서 부터다. 

우리는 불완전하다.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다. 그러나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Leonard Cohen)

그럼에도 나의 존재감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취약성을 끌어안고, 여기서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그 빛을 탐색하려할 때, 나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서도 신뢰가 쌓이는 연결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브레네 브라운이 들려준 격언 처럼 '어둠을 탐색할 용기가 있어야 우리가 가진 빛의 무한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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