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해크먼의 팀 설계론이 말하는 성과의 비밀
왜 뛰어난 인재를 모아도 팀은 실패하는가
J. Richard Hackman은 팀 연구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가 수십 년간 연구하며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면서도 명확했다. "팀워크는 좋은 사람을 모아놓는다고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많은 리더들이 여전히 착각한다. A급 인재만 모으면 A급 팀이 될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뛰어난 개인들이 모인 팀이 오히려 더 큰 갈등과 비효율에 빠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하기도한다.
과연 성과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Hackman의 답은 간단하다. 팀 디자인이다.
Hackman은 팀의 성패가 이미 출발점에서 70%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팀 효과성을 좌우하는 5가지 핵심 조건(enabling conditions)이 있다.
l 실제 팀(Real Team) - 명확한 경계와 안정된 구성원,
l 그리고 상호의존적 관계 매력적인 방향성(Compelling Direction) - 명확하고 도전적이며 중요한 목표
l 가능한 구조(Enabling Structure) - 팀워크를 촉진하는 역할과 규칙
l 지원적 맥락(Supportive Context) - 필요한 자원과 정보, 보상 체계
l 전문적 코칭(Expert Coaching) - 적절한 시점의 지도와 피드백
이 다섯 조건이 갖춰질 때 팀은 자연스럽게 성과를 낸다고 한다. 반면 많은 리더들은 잘못된 곳에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회의를 늘리고, 보고 체계를 강화하고, 관리 도구를 추가하며 팀을 '운영'하려고 한다. Hackman이 강조한 것은 운영이 아니라 설계였다.
이는 오늘날 AI와 디지털 툴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들여와도, 구조가 잘못 짜인 팀은 여전히 엉키고 무너지기 쉽다. 기술은 도구일 뿐, 팀의 기본 설계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Hackman이 정의한 성공적 팀의 기준은 단순한 KPI를 넘어선다. 그는 세 가지 축에서 균형을 이뤄야 진정한 성공이라고 보았다.
l 실제 성과 - 고객이나 조직에 가치를 주는 결과를 내는가?
l 팀의 지속가능성 -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팀이 유지될 수 있는가?
l 개인의 성장 - 구성원이 배우고 성장하며 의미를 경험하는가?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팀이란 결국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과만을 좇다 보면 팀은 소모되고 흩어진다. 반대로 성과, 지속성, 성장의 균형을 세심히 관리하는 리더는 팀을 건강하게 오래 데려갈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조직개발 현장에서 이 정의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단기 성과만을 쫓는 팀은 AI와 자동화 앞에서 금세 대체되지만, 학습과 관계를 중시하는 팀은 인간만의 고유한 힘을 길러낸다.
Hackman의 또 다른 핵심 통찰은 리더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팀 리더의 과잉 개입을 강하게 경계했다. "좋은 리더는 모든 순간에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리더는 팀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를 그는 'enabling conditions'라 불렀다. 자율성과 자원, 명확한 목표, 그리고 학습의 기회—이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리더는 무대 뒤로 물러나도 좋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기보다, 공연 무대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무대감독과 비슷하다. 무대가 완성되면 연주자들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간다.
AI 시대의 리더십 역시 같은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기술이 답을 내주는 순간에도, 리더는 팀이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는 환경,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는 자율성, 실수에서 배우는 학습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팀은 클수록 더 낫다"는 직관을 Hackman은 과감히 깨뜨렸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인원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 책임 전가, 조율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가 제안한 최적의 팀 크기는 10명 미만이었다. 특히 복잡한 업무일수록 더 작은 규모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그의 발견이었다. 이는 오늘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제시한 "두 판의 피자로 먹일 수 있는 크기"라는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원격근무와 글로벌 협업이 늘어나며 "더 많은 참여자"를 집착하는 조직들에게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Hackman의 교훈은 단순하다. 팀워크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책임의 밀도 문제라는 것이다.
Hackman의 이론은 학문적 텍스트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도 증명되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를 현장에서 검증하며 놀라운 결과를 얻었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이다.
2012년 구글은 "무엇이 최고의 팀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야심찬 연구를 시작했다. Julia Rozovsky가 이끈 이 프로젝트는 180개 팀을 분석하고 200회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Hackman의 이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성과를 좌우한 핵심은 '팀 구성원의 스펙'이 아니라, 팀이 갖춘 5가지 조건이었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 가장 중요한 요소
의존성(Dependability) - 신뢰할 수 있는 업무 수행
구조와 명확성(Structure & Clarity) - 명확한 역할과 목표
의미(Meaning) - 개인적 가치 발견
영향력(Impact) - 더 큰 목적에 대한 기여
특히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은 매출 목표를 17% 초과 달성한 반면, 낮은 팀은 19%까지 미달했다. 구글은 이 발견을 통해 혁신 조직의 성과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넷플릭스는 '자유와 책임(Freedom & Responsibility)' 원칙을 내세우며, 팀이 스스로 목표와 방식을 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는 무조건적인 자유가 아니었다. Hackman이 말한 '명확한 목표'와 '책임 구조'가 분명히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구조적 설계를 힘입어 넷플릭스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 속에서도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진화해 나갔다.
두 기업의 사례는 Hackman이 강조한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팀은 우연히 잘 되는 게 아니다. 의도적으로 설계된 조건 위에서 성장한다.
Hackman의 박사과정 학생 중 한 명이 바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Amy Edmondson이다. 그는 스승이 강조한 '팀 설계와 조건 만들기'를 계승하면서, 여기에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개념을 발전시켰다. 흥미롭게도 Edmondson의 심리적 안전감 개념은 연구 실패에서 탄생했다. 1990년대 후반, 그는 병원에서 팀워크가 좋을수록 의료 오류가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팀워크가 좋은 팀에서 오히려 더 많은 오류가 보고되었다. 이 '실패'를 통해 Edmondson은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좋은 팀은 실제로 더 많은 실수를 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숨기지 않고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 안전감의 핵심이다.
Hackman이 팀의 구조와 조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Edmondson은 그 조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견을 내는가"에 집중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 아무리 좋은 구조라도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오늘날 애자일 조직, 학습하는 조직, 혁신팀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Hackman이 팀의 하드웨어(구조와 조건)를 설계했다면, Edmondson은 소프트웨어(심리적 환경)를 완성한 셈이다.
두 사람의 연구는 현재 OD 컨설턴트가 팀을 설계하고 퍼실리테이션할 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통합된 프레임워크가 되었다.
Hackman의 팀 연구를 관통하는 결론은 명료하다. "좋은 팀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설계된 우연'이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한 구조와 조건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뜻이다. 수십 년의 연구 끝에 그는 결국 가장 단순한 진리에 도달했다. 팀워크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설계된 것'에서 비롯된다는 진리 말이다.
AI가 문제를 계산하고, 알고리즘이 팀의 일정을 짜주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Hackman의 통찰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이 함께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브리드 워크와 글로벌 협업이 일상화된 지금, 팀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소통은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Hackman의 5가지 조건은 더욱 빛을 발한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도 심리적 안전감과 명확한 구조가 있다면 팀은 여전히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조직이 여전히 도깨비 방망이를 기다리며 기술 솔루션에만 의존하고 싶어한다. 협업 툴을 늘리고, 프로젝트 관리 플랫폼을 도입하며 팀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물론 매우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오해를 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툴은 이미 잘 설계된 팀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뿐, 잘못 설계된 팀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조직개발을 담당하는 우리에게 Hackman은 세 가지 핵심 질문을 던진다
첫째, 당신은 팀을 '운영'하려는가, 아니면 '설계'하려는가?
운영은 이미 돌아가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다. 설계는 시스템 자체를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팀 문제는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둘째, 단기 성과만 보려 하는가, 아니면 지속성과 성장까지 고려하는가?
분기별 실적에만 매달리는 팀은 결국 소진된다. 진정한 고성과 팀은 성과와 성장,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추구한다.
셋째, 리더로서 모든 걸 주도하려 하는가, 아니면 조건을 만들고 적절히 물러설 수 있는가?
최고의 리더는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만 개입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팀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 질문들에 대한 우리의 답이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팀의 미래에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지 않을까. Hackman은 우리 시대의 리더와 OD 전문가에게 분명히 말한다.
"팀은 저절로 위대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만든 조건에서 비로소 위대해진다."
Hackman, J. R. (2002). Leading Teams: Setting the Stage for Great Performances.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Hackman, J. R., & Wageman, R. (2005). A theory of team coaching.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30(2), 269–287.
Edmondson, A.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 350–383.
Google re:Work (2016). Project Aristotle: Understanding team effectiveness.
Netflix (2020). Netflix Culture Deck: Freedom & Responsi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