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카페의 할머니

괴담이 기묘한 이유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by 괜찮은사람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서진은 두어 번 접어놓은 눅눅한 담요에서 올라오는 습기에 피아노 의자 앉듯이 몸을 당겨 앉았다. 의자에 앉았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이미 커피를 마신 상태라 에이드를 주문했지만, 없다고 해서 카페 주인 할머니의 단호하고 자신감 찬 말투에 등 떠밀리듯이 주문한 '수제 레몬청 주스'였다. 빨대를 휘젓자 희뿌옇고 형체 없는 건더기가 힘 없이 휘청였다.


'음, 냉장고 맛이네.'


이번이 두 번째였고, 혼자서는 처음이었다.

임장부터 계약까지, 중개사 없이 집주인과 직접 계약이라 사뭇 긴장이 되었다.


요즘은 정보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방대하다. 특히나 방구석 전문가들의 '1층 상가는 무조건 거르세요'라는 말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마치 생존본능처럼 계약 직전에 떠오른 생각에 서진은 입을 뗐다.


"카페 소음이 거주하는 곳까지 올라오지는 않나요?"

"아유~ 서진 씨, 여긴 그런 거 없어요. 그렇죠 사장님?"

".... 아, 뭐..."


사실 이 묘한 분위기는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부터였다.

날씨가 더우니 1층 카페에서 보자고 했던 집주인의 제안에 방문했던 그곳은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 전체는 통유리였지만 묘하게 어두워서 영업 중인지, 사람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름에는 '커피'가 들어있었지만 출입문에 붙어있는 손글씨의 '100% 마즙주스'가 '너 이 분위기 감당 가능하겠니?'라고 호통치는 듯해서 왠지 쭈굴 해졌다.


"오는 데 고생이 많았어요, 여기 앉아서 바람 좀 쐬요"


카페 안에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었지만 마치 '단골 VIP석'같은 카운터에서 연결되어 있는 기묘한 테이블이었다. 더위와 긴장감에 압도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스캔하는 듯'한 카페 할머니의 눈빛이 느껴져서 빠르게 집을 보러 이동했다. 집은 퇴실청소까지 마무리한 빈 방이었다.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니 다시 '그 기묘한 카페'로 인도했다. VIP석에서는 카페 할머니와 지인분의 열무김치 먹방이 이뤄지고 있어서 스피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스피커가 귀 바로 옆에서 울리니 소리도 잘 안 들리고 뭔가 벗어나고 싶어서 5가지 정도 되는 질문 중에 1,2개만 체크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집은 마음에 드는데, 왠지 찝찝한 이 기분은 뭐지?'

하지만 뭔가에 이끌린 듯 서진은 문자를 톡톡 작성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계약하고 싶은데 계약금 받으실 계좌 번호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100점짜리 집보다는 70점이라도 혼자 오롯이 있을 곳이 절박했다.




"오늘 이사 와서 앞에 이삿짐 트럭이 잠깐 주차 중이에요"


땀과 교통체증에 지친 서진은 트럭 기사님에게 드릴 아이스라떼를 주문하고 말을 건넸다.

서진이 혼자라면 절대 방문하지 않을 곳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할머니 사장님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웃음뿐이었다. 환대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 올 때마다 느낀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돼지저금통 속에 동전 꽂히듯이 적립되었다.


집 청소를 따로 못하고 들어와서 셀프 입주청소부터 가구 구입, 배치 등에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고요한 밤이었다.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둥둥둥 둥둥'하는 불쾌한 저주파 진동이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는 카페 주방과 맞닿아있는 벽과 바닥 부분이었다. 처음 카페에 갔을 때 뭔가 어둠침침하고 정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었던 미지의 '카페 주방'존. 연식이 꽤 되어 보이는 대형 냉장고와 먼지 낀 환풍기, 온수기, 제빙기, 포스기 그리고 10인용 대형밥솥까지. 입주 첫날 집 가장 안쪽에 위치한 보일러실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한동안 쇼크에 빠져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여기는 바퀴가 없는데? 택배박스에서 따라 들어온 거 아닐까?"

"저도 그럴까 봐 박스 포장재는 바로 내어두고 있습니다."


정확히 입주한 첫날, 심지어 택배박스도 없이 김장비닐봉지에 옷가지만 덜렁 가지고 왔던 그날. 심지어 바퀴는 발견된 다음 날, 보일러실 배관을 마치 물 없는 워터파크 미끄럼틀 오르듯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서진은 머리가 띵 해졌다. 10년 넘게 산 본가 아파트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끔찍한 몰골의 바퀴였다. 그게 더위 때문인지, 일주일 넘게 혼자서 청소에 가구배치까지 하느라 기력이 쇠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뭔 소리가 난다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며칠밤을 고민하다가 보낸 문자에 대한 집주인의 답장의 첫마디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 익숙한 x 같은 기분의 정체는 '갑질'이었다. 서진이 경험한 '갑'들은 주로 서진을 '쥐었다'는 착각 속에 차곡차곡 서진을 찢어놓았었다. 선택지는 '순응'아니면 '도망'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서진은 그 선택지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주인은 뭔가 당장 답을 요구하지 않아도 무작정 전화를 걸곤 했다. 통화의 내용은 항상 어떠한 결론이나 해결책도 없이 '우리 집은 아무 문제없는데? 되게 예민하시네. 당신이 참으세요'식으로 끝났다.


'그래, 80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60점짜리 집이었던 거야.'


서진은 오늘도 울려오는 저주파 진동에 에어팟을 끼고 유튜브를 켜고 빗소리를 재생했다. 뭉개 뭉개 올라오는 부정적인 생각도 피곤함에 강제 오프 되었다.




어려서는 '나를 잘 돌봐주는 사람'이면 되었다. 그게 '착하고', '공부 잘하는'이라는 절대적인 조건부가 붙더라도. 우습게도 부모에게서 시작된 조건부 애정은 회사를 가서도, 연애를 할 때도 반복되었다. 그랬기에 '넌 너무 예민해', '왜 이렇게 유별나?', '회사에서는 둥글둥글한 사람을 선호해요' 같은 말들도 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말이겠지 하며 오히려 아픈 상처에 셀프로 소금을 치곤 했다. 관심과 애정이 있기에 저런 말들을 '나를 위해' 해준다고 믿어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머리가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들이 준 건 진심이라는 마음의 형태가 아닌 손쉬운 통제의 도구였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서진은 여느 때보다도 아팠다. 서진을 가장 상처 주고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안다.

상처를 주는 행동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은 '지금 그 행동은 상처 준다'는 알림과 그에 따른 거절이라는 것을. 나에게는 '거절'하고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정말 예민한 사람은 쉽게 화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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