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항상 같은 차림이었다. 버킷햇부터 발끝까지 얼룩 하나 없는 올 화이트 착장 속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빨강, 흰색, 네이비의 직사각형이 박힌 그 로고. 익히 알고 있는 명품 브랜드이지만 그녀의 올 화이트 패션에 자리 잡고 있는 로고는 디자인이 아닌 어느 장군의 훈장 같았다. 첫째 날 집을 볼 때도, 둘째 날 계약을 할 때도, 그리고 이삿날 짐을 정리하고 있던 서진의 집의 도어록을 거침없이 연속 2번(이쯤에서 서진이 나가지 않았다면, 아마 그 도어록은 무사하지 못했을 듯.) 눌러댔을 때도.
"아유~ 내가 나이가 들어서 문자대신 전화했어.
그래서 뭔 내용이에요 그게?"
직업 특성상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전화'와 '회의'로 보내온 서진은 처음으로 전화 공포증을 느꼈다. 고심해서 말을 고르고 내용을 리뷰하고 문자를 보내면 어김없이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마치 의사 선생님이 무릎을 작은 어금니처럼 생긴 도구로 톡 두드리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당황스러워질 정도로 발사되는 싸커킥처럼. 방문일정을 잡을 때도, 집 보기 전에도, 계약 전에도. 반복되는 그녀의 후진 없는 전화는 마치 테러 같이 느껴졌다. 심지어 '지금 업무 중이라서 문자로 보내는 점 양해 부탁 드려요'라는 고르고 고른 말도 소용없었다.
점점, 그녀에게 해야 할 연락 하기가 꺼려졌다.
'지금 바퀴 잡아주실 분, 만원 드려요!
제발요... 지금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서진은 동네 커뮤니티에서 벌레 잡이 초단기 고수익 알바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100%, 1,000%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다 창문을 통해서 운 좋게(!) 날아왔을지도 모르지만 온전히 이제야 내 공간을 마련한 이들에게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불쾌한 요소' 그 자체인 것이다. 이사 첫날밤 보일러실 배수구 안에서 뱅뱅 돌던 그것의 정체를 발견한 서진은 온몸에 검은 피가 흘렀다. 겨우 짐들을 한쪽으로 몰아두고 대충 만들어놓은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불을 끌 수도, 보일러실과 연결된 화장실 문을 감히 열 수도 없었다.
다음 날 서진은 24시간 창문이 개방되어 있지만, 기묘하게 퀴퀴하고 쩌든 내가 진동하는 보일러실을 스캔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하수구에 무거운 생수병을 올려두고 곳곳에 휑-하게 비어있는 틈들에 키친타월을 구겨 넣었다. 철수세미부터 틈새 메꾸기용 자재까지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이제 다이소에서 '소' 크기의 쇼핑백을 사는 일보다는 무조건 '대'를 누르는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보일러실로 연결되는 불투명한 문을 샤워커튼으로 가리고서야 겨우 구석에 박혀 샤워를 마쳤다. 대강 물기를 닦고 환풍기 따위 없는 화장실에 가득 찬 습기를 빼기 위해서 유일한 환기 통로인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아직, 살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름철이라 해충이 있는 것 같는데 혹시 방역 계획은 없으신가요?
사실 이사 첫날에 보일러실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어요.'
사장님, 이라는 호칭에 뭔가 자괴감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주인님'이라고 하기엔 더 굴욕적이다. 서진은 보낸 문자를 멍하게 쳐다봤다. 이 정도면 무례하거나 추궁하는 느낌은 아니겠지. 하는 찰나에 그녀의 '싸커킥'이 발동했다. 공포를 느끼기엔 이틀 동안 수면부족과 방충 작업으로 기진맥진한 서진은 그대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뭐라고요? 여기는 바퀴벌레가 나온 적이 없는데.
택배박스에 끌려 들어온 거 아닐까?
방역은 입주 전에 다했죠~ 뭐 붙이는 바퀴벌레약이라도 사다 줄까?"
공격적이진 않지만 매우 일방적인 톤으로 다다다닥 박혀오는 그녀의 딕션에 혼미해진 서진은 오히려 '감사'인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역시, 말하지 말걸 그랬어.'
씁쓸해진 서진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바퀴벌레 젤'을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래, 내가 집을 소홀히 본 게 잘못이지.' 결국 과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화살은 서진의 가슴에 명중했다.
승전 배지처럼 그녀의 카라 깃에 새겨져 있던 로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의 옆에서 마치 'Mute'된 것처럼 다소 허술한 차림에 표정이 비어있던 그녀의 아들과 남편이 생각났다.
그들은 휴전 중인 걸까, 패전국의 패배감을 안고 살아갈까.
생각하던 서진은 '풋'하고 웃었다.
어떤 사람들은 적에게 날려야 할 화살을 자기 자신의 심장에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