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에서의 폭력은 조용하고 은밀하다.
서진의 어머니는 '100점짜리 어머니'였다.
다만 그 판단을 내리는 건, 우습게도 서진이 아닌 타인이었다.
"너희 엄마 같은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니? 잘해."
그나마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이모에게, 처음 속내를 비춘 날.
서진은 악의 없는 이모의 말에 조용히 무너졌다.
'그래,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건가 봐.
우리 엄마는 나한테 정말 잘해주는데.'
그때부터 '자기부정'은 서진의 마음 깊숙이 뿌리내렸다.
어려서부터 서진은 조용했다. 조용히 사고 치는 타입이 있다고 하지만 서진은 아니었다. 대들지 않고 얌전한 행동과 좋은 성적표를 가져오는 것. 어머니의 애정을 얻기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서진은 소위 말하는 '타고난 머리'는 아니기에 처음 '95점'을 받은 날. 들뜨는 마음을 누르고 시험지를 가지고 하교했다.
"1개는 왜 틀린 거야? 다음엔 100점을 맞도록 노력해 봐."
서진은 서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면 서진은 어머니가 기뻐할 '100점' 시험지를 가져오지 못한 나쁜 아이 었기 때문이다. 서진은 사립학교에 다녔다. 코 앞에 학교가 있었지만 매일 40분씩 등, 하교 버스를 타야만 했다. 뭐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서진은 성인이 되어서도 차멀미가 심했다. 흔들리는 버스, 시끄러운 아이들, 찜통 같은 온도, 숨 쉬면 호흡기를 타고 들어오는 '차 냄새'까지. 더운 여름날, 학교에서 배식받은 흰 우유팩이 책가방에서 터진 날 이후로 버스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1학년 남자애가 있는데...
버스 계단에서 날 장난으로 밀었어."
서진의 무릎의 절반이 빨갛게 아스팔트에 갈려서 온 다음 날이었다. 무릎보다 얼얼했던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등굣길에 따라나선 아버지가 짓궂은 남자아이에게 상스러운 욕과 폭언을 쏟아붓고는 울먹이는 아이에게 "누나를 괴롭히면 안 돼, 그렇지?"라고 말한 날 서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서진의 집은 현관을 들어와서 2층 계단을 오르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1층에는 세를 들어 사는 1인~4인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2층은 서진의 집만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기억은 온통 뭔가 부서진 기억들 뿐이었다. 가장 선명했던 건, 아버지가 취미로 기르던 대자 어항 안에 있던 열대어들이 바닥에서 아가미를 헐떡이는 장면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던 열대어들의 까만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것도 새끼라고?
네가 맞아도 숨어있는 거 봐. 야 너 나와봐"
두 빌런들로 시작된 싸움은 때로는 방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던 서진에게까지 불똥이 튀곤 했다.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돼.'
아버지의 분노 버튼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였다.
신발장에 신발이 지저분해서, 말투가 기분 나빠서 등 다양했던 이유들 중 가장 소름 끼치는 건 그가 입에 술 한 방울도 대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온전히 그의 기분에 숨죽이고 눈치 보는 건 서진뿐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든지 링에 올라갈 준비가 된 레슬러처럼 화가 나있었다.
#2에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