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못 보고 돌아왔네, 무정한 것. :p'
장난스러운 이모티콘이 붙었지만 서진은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 뭔가 또 '툭' 끊어지는 것 같았다. 거의 20년은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깨끗하게 상처가 낫지 않은 흉터처럼. 그녀와의 기억은 그랬다.
해외라고는 일본여행이 고작이었던 20대 초반. 출발하기 전날부터 고모의 심술은 시작됐다. 일부러 고모의 오프날에 맞춰 일정을 잡았건만 출발 직전에 공항 픽업을 안 가도 되지 않냐, 성인인데 알아서 찾아와라는 식에 서진의 부모는 진땀을 빼며 그래도 나와주면 안 되겠냐고 설득을 했다. 처음 타는 장거리 비행에 체기에 시달리며 납작하게 눌린 머리로 만난 고모는 뜻밖에도 환한 얼굴로 서진을 맞았다.
서진의 고모는 서진의 나이 즈음에 뉴욕으로 떠나서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일하고 살았다. 한국에는 거의 나온 적이 없었다. 다만 1년에 한 번씩 의류수거함에서나 볼 만한 헌 옷을 잔뜩 한국으로 부쳐왔다. 누구도 원한 적 없었고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고모는 멈추지 않았다. 보내준 옷의 주머니에서는 가끔 쓰레기가 나오곤 했다. 고모는 그걸 '선물'과 '성의'라고 했다.
"여기가 뉴욕의 부촌이야."
자랑스럽게 말하는 고모를 따라 들어간 원베드룸 아파트에서 서진은 깜짝 놀랐다. 어둠침침한 집에는 알 수 없는 실타래 더미와 옷더미가 가득 쌓여있었다. 그 옷 더미 속에 푹 꺼져있는 소파가 서진이 앞으로 지내게 될 공간이었다. '뭣도 모를 때'라는 건 1년 간의 뉴욕 생활의 이점이자 치명적 단점이었다. 첫날 근처 뮤지엄을 가던 날, 고모는 서진의 티셔츠에 코카콜라가 그려진 걸 보고 '넌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니?'라며 비아냥 거렸고 뮤지엄에서 멋도 모르고 거동도 힘든 미국 변태 할아버지의 구애에 시달렸던 걸 듣고 깔깔거렸다. 오래된 외국생활과 독신주의 탓이겠지. 그렇게 넘기고 넘기다가 일이 터졌다.
한국에서 보내온 아우터와 겨울니트가 시발점이었다. 뜬금포 그 자체였던 야밤의 분노와 약 2시간 동안의 통화(서진의 부모) 끝에 서진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욕의 살벌한 렌트값에 결국은 3개월의 고통의 시간을 저당 잡히는 걸 택했다. '왜였을까'라고 생각해 봤자 소용없었다. 뭔가 고모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분명했다. '그 따위 거지 같은 옷보다 여기 좋은 옷이 널렸다'는 고모의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 서진은 소파에서 잠들며 생각했다. 첫날에 느낀 어둠침침한 낡은 물건들 속에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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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몇 년 뒤 고모는 병원을 퇴직하고 한국 출입이 잦아졌고 심지어 한국에 세컨드 하우스까지 마련했다. 최근까지도 서진은 부채를 갚는 마음으로 고모를 맞이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건 무언의 압박이었다. 한국에서도 고모와 시간을 보내는 건 진 빠지고 지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고모와의 대화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팔순을 향해가는 나이었지만 고모의 이야기는 마치 갓 20살이 된 여자아이 같았다. 가족들은 그녀가 너무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한국에 대한 인식, 현실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너무 긴장해 있으면 다친 줄도 아픈 줄도 몰라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여기저기 까지고 멍든 데가 올라오는 거죠."
서진이 어느 모임에 나가서 했던 말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사회생활을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왜 지금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진의 답이었다. 그랬다. 20대 초반에 타지에서 고모의 뜻 모를 심술과 통제에 시달렸던 시간은 한국에 돌아오고부터 여기저기 몸과 마음의 멍으로 올라왔다. 친구처럼 가까웠던 동아리 사람들과의 모임에 냉소적으로 변한 게 시작이었다. 설상가상 휴학을 하고 돌아오니 학교에 친구들은 이미 인턴십이나 취업준비로 모두 떠나 있었다. 혼자서 강의를 듣고 밥을 먹으면서 어느새 서진의 모습은 언제나 외톨이였던 서진의 고모와 닮아 있었다.
"얘네 고모가, 그러니깐. 엄청 유난스럽잖아 깔깔"
돌아온 집에서도 고모에게 당했던 말도 안 되는 정서적 폭력은 희화화되어 엄마의 통화소재로 쓰일 뿐이었다. 차라리 웃기게라도 생각해야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이에도, 몸에도 전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코스튬 같은 옷을 고모의 생일 선물이란 이유로 억지로 입고 나가서 집 앞 카페에 가서 갈아입고 외출했던 일. 감기에 걸렸을 때 운동 부족이라 그렇다며 비 오는 공원에 끌려나가 일주일을 앓아누웠던 일. 지금도 돌이켜보면 서진에게 웃음기 하나 남기지 못할 끔찍한 일이었다.
서진은 금요일 저녁에 '이번 주말도 힘드니?'라고 온 고모의 톡을 읽고 고민하다가 답장을 써 내려갔다.
'요즘 일이 바빠서 이번에는 힘들 것 같아요. 잘 지내다 가세요.'
고모는 읽었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서진은 그렇게 과거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대신 약을 발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