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뜨개 단상

by 괜찮은사람

최근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실 뭉텅이 4개 중에 2개를 거의 다 뜨던 시점이었다.


손바닥 한 뼘 만하게 시작했던 목도리는 어느새

두 뼘은 거뜬히 넘는 기이한 사다리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실 2개를 북북 뜯어서 초반으로 돌아갔다.

코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나, 둘, 셋. 세면서

신중하게 뜨기 시작했다.


내 손 안에서 움직이는 고작 한 뼘만 한

목도리를 만드는데도 온 정신이 필요하다.


딴생각을 잠깐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모양이 이상해져 버린다.


고작 뜨개도 이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걸까.


당장 아침에 눈을 뜨는 컨디션과 기분도 예측할 수 없다.


운동을 하고 기분 좋은 아로마로

잠이 들게 하는 노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벽에 느닷없이 번개에 깰 수도,

오작동한 보일러가 불러온 한기로 잠을 설칠 수 있다.


받아들일 수밖에.

체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그럴 수 없는 것의

영역이 훨씬 넓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매 순간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이 생각까지 이르니 냉소와 긴장이 해소됐다.


일을 할 때는 내가 1시간이라도 더 신경을 쓰면

결과가 달라질 것 같아 매달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요인들로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실망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랐다.


돌아보면 매일 운동을 하자는 다짐으로

내 몸 하나 일으키기 힘들었던 나였다.


커다란 우주 속에서 고작 사람 한 명은

먼지처럼 스쳐지날 뿐이다.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프로젝트의 성공도,

죽을 것처럼 아팠던 시간들도 지나갈 뿐이다.


뜨개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출해졌다.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렸다.


나의 기분과 컨디션을 읽어 음식을 마련하는 것.

그 작은 통제의 기쁨에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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