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에 기꺼이 공들이는 이유
MBTI에 터프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었다면, 분명 엄마는 극 R(Rough), 난 극 S(Soft)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근처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여자 아이였는데 이름도, 겉모습도, 행동도 선머슴에 가까운 아이였다. 하지만 아파트 현관을 열고 마주한 집 풍경은 칙칙한 나무색이 주를 이뤘던 우리 집과는 달리 '올화이트' 느낌이었다. 당시 박주미 배우 느낌의 친구의 엄마는 집과 깔맞춤 한듯한 화이트톤의 원피스를 입고 토끼모양으로 자른 사과를 내주셨다. 그 모습엔 설거지나 빨래에서 묻어 나온 물방울 하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보송했다.
"오늘 잘 놀러 갔다 왔어?"
"엄마, 원희네 집은 되게 예쁘더라."
"그래? 역시 아파트라 그런가~"
"테이블 위에 물그릇이 있었고 거기에 초가 동동 떠있었어"
그렇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다름이 아닌 인테리어용 초였다. 물과 초라니(!) 내가 봐온 초는 제사 지낼 때 상 위에 세우는 가래떡같이 생긴 양초뿐이었다. 그마저 큰 불꽃을 일렁이다가 제사가 끝나면 촛농이 녹아내려 엉망이었다. 하지만 친구 집에서 본 초는 마치 작은 술떡처럼 단아했다. 심지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촛불 따위는 붙일 일 없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도도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초가 아름다운 크리스털 그릇의 '물'위에 떠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초는 제사상을 밝힐 필요도, 그래서 뭉그러질 걱정도 없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용 초였다.
"그런 건 우리 집에도 있어"
엄마는 약간 긁힌 듯, 찬장에서 와르르 화채그릇 같은 넓적한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물과 시장에서 공수한 인테리어용 초가 담겼다. 나무의 연륜과 세월이 느껴지는 구옥이었던 우리 집과는 새삼 다른 것이었다. 나무톤의 바닥과 노출 서까래 인테리어에 등장한 초 연못(?)은 매직아이 속 글자처럼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며칠이 지나고 그 인테리어에도 감흥이 없어질 즈음이었다.
"엄마, 여기 이상한 게 떠있어"
초 연못에 물이끼 같은 이물질이 둥둥 떴다. 아마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 탓에 미생물이 열일해 연못 안이 테라리움화가 된 듯했다. 엄마는 '그러니까 이런 건 쓸데없다니까. 귀찮기만 하고'하면서 물그릇을 촥 화장실에 쏟아버렸다. 그렇게 우리 집의 초 연못의 시대는 끝났고 내 마음에도 찬물이 촥 끼얹어졌다. '내가 물을 갈았어야 했나'라는 작은 죄책감부터 애초에 우리 집에 어울리지도 않는 걸 괜히 때 써서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그럼 물 좀 갈아줄래?'라던가, '어머, 물을 갈아야겠다'라고 반응해 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우리 엄마의 R(rough) 성향과 나의 S(soft) 성향은 나와 엄마의 삶에서 항상 대비되는 커다란 벽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
이 기억은 오늘 딥블루 톤의 새 수건 다섯 장을 주문해 세탁하면서 떠올랐다. 본가에는 모두 색깔과 출처와 나이가 다른 수건들이 화개장터처럼 뒤섞여있다. 그중 가지고 나온 것 중에 이번에 고3 수험생이 되는 사촌동생의 돌잔치 수건도 있어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주기로 결정을 했다. 본가에서 수건을 쓸 때는 마치 복불복처럼 너무 얇거나 낡은 수건, 때로는 잘못 말려서 냄새가 나는 수건이 2-3번에 한번 꼴로 걸리곤 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기껏 샤워를 하고 몸에 닿는 수건이 쾌적하지 못하면 기분이라는 게 망쳐진다. 이 부분을 엄마에게 얘기하면 엄마는 줄곧 '넌 성격이 지 x 맞아서'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새 수건을 사기에 돈이 부족하거나 쇼핑의 사각지대에 있던 건 아니었다.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은 꽤나 고급으로 교체되곤 했었기에 지나서는 내돈내산으로 수건을 장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쾌적하지 못한 수건들이 돌려 돌려 돌림판처럼 어딘가에 뒤섞여 돌아오곤 했었다.
그때는 엄마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매번 이야기해도 왜 엄마는 낡은 수건을 버리지 않는 걸까? 지금도 물론 100% 이해가 가진 않지만. 한 가지 인사이트는 얻었다. 나에게는 복불복 게임처럼 느껴졌던 낡은 수건이 엄마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마치 MBTI에서 I(내향)냐 E(외향)냐를 두고 우월함의 위아래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엄마와 나는 그저 성향이 달랐던 것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이해한다. 나에게는 샤워 후에 몸에 닿는 수건의 잘 마른 감촉이 큰 행복이다. 그렇기에 기꺼이 몇 수냐, 원단이 뭐냐를 따져가며 수건을 고르고 단독 세탁을 해 팡팡 물기를 털어 널기를 감수한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성향대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