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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비 Jan 12. 2023

피자헛 한판이 떠오르는 헛헛한 하루

헛헛하다: 채워지지 아니한 허전한 느낌이 있다

기자로 일하다 보면 이따금 헛헛하다.


취재원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흔한 일이다. 내가 할 일은, 그가 전화를 받도록 하는 일이. 어떻게냐고. 미끼를 던진다. 매혹적인, 거부하기 힘든 미끼여야 한다.


취재원은 직장인이다. 피 인사평가자다. 인사평가자인 상사 얘기를 꺼내면 열에 아홉은 반응이 온다. 문자를 남긴다.


부대표께서 부장님 칭찬을 워낙 하더라고요. 한 번 인사나 드리고 싶어 연락드렸어요.”


5분 여가 지났을까. 스마트폰이 몸을 부르르 떤다. 화면을 본다. *** 장 이름 세 글자가 뜬다. 상사를 언급하는데 대답하지 않고 버틸 배짱을 가진 직장인은 드물다. 5분 뒤, 사내 카페에서 보기로 한다.


“2년 전, 그 일 있잖아요. 정리한 보고서를 가지고 계신다면서요”


넌지시 운을 띄운다. 기사를 쓰려면 꼭 필요한 보고서다. 부대표에게 큰 그림은 다 들었고, 장에게서 세부 내용을 채울 보고서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장 표정이 영 곤란하다.


“내부 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고, 아직 재판 중이라 사안이 예민하기도 해서요”


“점심에 부대표님 만났는데 제게 다 말씀해 주셨어요. 이 정도면 쓰라는 거죠”


부대표님이야 편하게 말씀했지만, 뒷감당은 제가 다 해야 하거든요. 저로서는 곤란한 상황이에요. 의중을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몇 번의 실랑이가 더 오고 간다.


익명으로 처리하도록 하겠다, 편집해서 당신네 기관에서 공개한 게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곤란하다였다. 결국 난  


“아, 네”


라고 답하고 대화를 끝냈다.


장과 나는 웃으며 악수하고 돌아섰다. 자리로 돌아와 부대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부대표님, 담당 부장이 말씀하신 그 보고서 못 주겠다네요”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아유, 그새 바로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니까 나중에 쓰죠. 좋은 건 있으면 말씀드릴게”


헛헛하게 웃고 전화를 끊는다. 부대표 이름이 뜬 스마트폰 화면을 무심히 바라본다. 점심 식사 때 부대표의 자기자랑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괜히 헛헛해진 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나 좀처럼 헛헛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주말이면 피자헛 갈 생각에 들뜨곤 했던 유치원 때가 참 좋았는데. 조만간 피자 한판이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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