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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비 Jul 08. 2023

새벽, 주말까지 근무하며 영국 인터뷰이 섭외했더니

예산 문제로 출장 못 간다고 합니다 - 영국 출장 준비기 2(종료)

이미지 제작: 마이크로소프트 bing

얼마 전 어렵게, 아주 어렵게 영국 출장을 준비 중이라고 썼다. 온갖 난관을 뚫은 끝에 3명을 컨택해 냈다. 정말 징한 시간이었다. 거의 한 달 내내, 퇴근 후, 영국 각 대학 공식 메일 계정은 물론 인터뷰를 하려는 당사자의 이메일이며 사무실 연락처를 겨우 얻어내 연락하고, 사정하고, 안된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추천받아 또 연락하고, 사정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런 일은 적당히 견적을 보고 못 하겠다고 말하면 좋았으련만. 문제를 마주하면 외면하기보다는 맞서고 해결하려드는 타고난 성미가 잘못이었다.


기자 생활 6년인가, 7년인가 모르겠으나 가장 난도가 높았다. 통상 기자가 코멘트를 듣고 싶다고 하면, 아주 민감한 정보를 다루고 있지 않는 한, 대부분 응해주기 마련이다. 물론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긴 하다만, 해외에서도 기자라고 하면 우호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국에서 한국 기자라고 하니,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말로 해서 뭣하랴. 내 사정을 설명하고 한 당국 관계자에게 도와달라고 하니, 찰떡같은 비유를 들어줬다.


"이건 뭐, 저기 베트남 어디 기자가 뜬금없이 메일을 보내 대뜸 금융 관련 이슈에 대해 당신이 전문가이니, 인터뷰를 원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네요, 하하하. 참 어렵겠습니다. 애쓰세요."


듣고 보니 이것 참 찰떡같은 비유다 싶어 나도 모르게 함께 웃었다. 끝에는 눈가에 눈물이 찔끔 났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어려운 과제를 줘서, 밤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 고생을 하게 하는 거지라고.


정말이지 가능한 모든 루트를 두드렸다. 공식 루트부터, 넛지를 활용해 줄 수 있는 경로까지 말이다.


영국의 한인 시의원, 영국 대학의 한국 교수, 주한 영국대사관의 부대사관, 주한 영국문화원장, 주요대 총장, 주요대 기금 총괄까지. 직접 컨택을 위해서는 링크드인을 가입해 처음으로 내 프로필을 기입하고 열심히 영국 대학 및 벤처캐피털 인사를 팔로우하고, 메시지를 보내 1촌 신청을 하고, 저간의 사정을 말하고 인터뷰가 가능한지 물었다. 마침 한국에서 국제증권협회협의회(ICSA) 행사가 열렸고 일부러 시간을 내 거기까지 찾아가, 영국 대체투자 자문사 CIO를 직접 만나 간곡히 인터뷰 요청을 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한국 회사들에도 도움을 청했다. 이 기간 영국 대학과 관련이 있는 직간접 관계자 100명 넘는 이들에게 말로 부탁하고,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분명 돕는다는 것을 이번 취재원 섭외 과정을 통해 배웠다. 무수한 '읽씹'을 당했다. 그중 몇몇은 답장을 해줬다. 대부분 거절이었다. 사람인지라 그럴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십 통의 입사 원서를 쓰고 우수수 '귀하는 우수한 인재이나...'라는 문구를 보는 때의 심정과도 같았다.


이때마다 난 속으로 되뇌었다. 야구에서는 삼할(10번 중에 3번 안타, 0.3 이상)만 돼도 우수한 타자다. 7번의 배움이 있어야 3번의 성공을 맛볼 수 있다. 난 이제 겨우 6번 혹은 7번 배웠을 뿐이다. 앞선 배움을 통해 다음엔 꼭 성공해 낼 것이다.


섭외하려는 인터뷰이에 대한 기사며 프로필, 최근 링크드인에서 좋아요 한 내용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 내용과 왜 우리가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는 내용 등을 담으면서 차차 인터뷰 섭외 가능성은 높아졌다. 읽씹과 거절의 메시지, 거절의 통화를 통해 대체 왜 나와 인터뷰를 해주지 않는지 피드백하는 시간은 나를 한 차원 더 성장시켜 줬다. 한편으로는 자신감도 심어줬다. 언어, 국가, 시간의 장벽이 있어도 도전을 하면 누군가는 이를 기꺼이 수용해 주구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구나 하는 것을 체화할 수 있었다.


결국 서너 명의 인터뷰이를 섭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 표 예약을 하려던 바로 그날, 한정된 예산의 문제로 내가, 아니, 나만 출장을 못 간다고 했다. 내 지난 한 달간의 퇴근 후 시간, 애씀, 노력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람을 두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뭘 하는 건지 답답했다. 회사 생활 워스트 파이브 안에 드는 경험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려운 출장을 가라고 해서, 거의 한 달여간 퇴근 후 자정까지 쉬지도 못하고 컨택 작업을 한 끝에 현지에서 만날 인터뷰이들을 섭외했고, 이 작업이 다 끝나 출장을 떠날 시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예산이 한정돼 있으니 가지 말라고 했다. 대신 섭외는 이미 했으니 줌이나 서면으로 현재 기획하는 곳에 내용을 토스해 주란다.


글을 쓰면서도 답답함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있어봤자 나만 손해다. 이번 출장을 가지 못해서 오히려 갖게 되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도록 가급적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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