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개량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대부분 여자였다. 남자들이 개량한복을 입는 것은 아저씨들이 전부였다. 나는 인사동 컨셉에 맞게 개량한복을 한벌 샀다. 개량한복은 생각보다 비쌌다. 학교에서 개량한복 입고 다니시는 교수님이 한분 계시는데 검소한 분이 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웬만한 정장보다 훨씬 비싼 옷이었다. 개량한복을 입고 장사를 하니 매출이 올라갔다. 입을 때와 입지 않을 때의 매출이 10-20퍼센트 차이가 났다. 확실히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 청년이 머리카락까지 기르고 카메라를 들고 서있으니 이목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개량 한복과 카메라 장비를 챙겨서 인사동으로 가는 길, 낙원상가 밑 신호등을 지나려고 하는데 경찰들이 쭉 서서 막고 있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찰 아저씨는 별 일 아니니까 협조 좀 해달라고 대답했다. 한참 기다려도 길이 열릴 생각을 안 했다. 나는 다시 물어봤다. "여기 지나가야 하는데 길 좀 열어주시겠어요?" 경찰 아저씨는 높은 사람이 지나가니까 이해 좀 해달라고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줌마가 말했다. "여기 지금 대통령 지나간다고 이러는 거예요. 뭐 이리 유난을 떠는지." 경찰은 난감한 표정으로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고 나는 기다렸다. 시간이 더 지나자 검은색 차 여러 대와 경찰 오토바이가 줄을 지어 지나갔다. 군대에서 사령관이나 사단장이 지나갈 때 이미 겪어봤던 일이기에 나는 익숙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줌마가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경찰은 아줌마를 저지했다. 아줌마가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하는데 왜 이러냐고 말하자 경찰 아저씨는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할 수도 있으니까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했다. 아줌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경찰관의 신분증을 먼저 요구했고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다른 경찰관 아저씨가 아줌마를 밀쳤다. 아줌마가 여러 명의 경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길래 나는 아줌마 편을 들었다. 경찰 아저씨는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내게 증인 요청을 했다. 자기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때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리고 쌈지길 앞에 도착했다. Big issue 잡지를 파는 아저씨와 가판대에서 슬라임을 파는 아저씨가 와있었다. 나는 아저씨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진을 찍는데 첫 손님은 외국인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손님들이었다. 작년 여름에 말레이시아를 갔다 온 얘기를 하자 금방 친해졌고 그들에게 지도를 보고 길을 알려주었다.
중국 손님도 왔다. 인사동에서 명동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길래 나는 걸어 거 가기엔 조금 거리가 있으니 중간에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지도를 보면서 길을 표시해주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무료로 찍어주었다. 중국 친구는 고맙다며 길가에 앉아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건네주었다. 엽서였다. 중국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는 엽서에 편지를 적어주었다. 참 고마웠다.
새터민 아주머니도 오셨다. 어눌한 서울말로 내게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보시는 아주머니에게도 사진을 공짜로 찍어드렸다. 아주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많았다. 고생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대화를 나눴다. 아주머니는 북한에 두고 온 자식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인사동 거리가 아주머니의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사진을 받아 든 아주머니의 손목이 매우 가늘었다.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의 시선을 받는다. Big issue(노숙자들이 파는 잡지)를 파는 노숙자, 길거리 장사를 하는 슬라임 아저씨, 히잡을 쓴 말레이시아인, 한국에 여행 온 중국인, 남한에 정착하고자 하는 새터민.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언젠가 경제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처할 수 있다. 때론 길거리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고, 우리를 곱게 보지 않는 나라로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뜻하지 않게 외국에 정착해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사상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경제적 위치가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고, 외모가 다르다고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언젠가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나를 패배자로 만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다름을 인정하자.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이방인이자 나그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