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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여행은 성숙한 시선을 완성해가는 일이다.

여행자가 본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몽생미셸에 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개선문 광장 앞에 도착한 우리는 첫차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예쁜 여자가 있었으면 말이라도 걸어봤을 텐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슬픔과 추위가 가득한 새벽 공기를 마시다 보니 첫차가 오는 시간이 됐고 이용규 가이드님과 나는 숙소로 와서 아침잠을 잤다.   

잠을 좀 자고 일어났다. 창가를 보니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파리의 아침은 추웠지만 창문을 열었다. 팔꿈치를 기대어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데 가이드님이 내게 말했다. "일어났냐? 밥 먹자." 

밥솥에 있는 밥을 모두 꺼내어 계란 프라이, 참치, 참기름,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었다. 밥을 다 먹고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님을 따라서 파리 구경을 하기로 했다.

여행기간이 길어지니까 내가 공부해서 온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는 작업이 귀찮아졌다. 그냥 스케줄에 맡기기로 했다. 게을러진 건지, 여유로워진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조급함은 없다. 마음이 편하다. 가이드님을 따라서 은행을 갔는데 은행이 닫았다. 그래서 다른 은행을 갔는데 한국인이 있었다. 한국인이지만 분위기는 프랑스인 같은 나이 든 한국 여자가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로 나왔다. 가이드님을 따라서 다니는 파리는 그동안 왔던 파리와는 달랐다. 정말 파리에 사는 기분이었다. 흥분되는 로맨틱은 물론 없었거니와 왠지 한국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리운 뭔가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파리에서의 일상이 그렇게 로맨틱하지만은 않은 것이 느껴졌다. 길거리에는 히잡을 쓴 여인이 종이컵을 갔다 놓고 동전 한 잎을 구걸하고 있었다.

신발매장에서 가이드님 신발을 고르고 있는데 신발 사이즈를 보여달라고 하니 신발을 만들어오는지 20분이 넘도록 사이즈를 가져오지 않는다. 여유로운걸 넘어서서 일처리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냥 느리다.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인가 보다. 속이 터졌다. 신발을 고르고 있는데 파리에서 20년 동안 생활한 가이드님이 오셨다. 머리를 자르고 왔는데 모자에 머리가 눌려서 그런지 머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듯하다. 이용규 가이드님이 날 소개했다. "이 친구 신학생인데 되게 특이해. 초대 교인들 마음 알고 싶다고 카파도키아 동굴에서 노숙하는 친구야."

파리에 20년 사신 최준호 가이드님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때 직원이 드디어 신발을 가지고 왔다. 몇 켤레의 신발을 보여주며 괜찮다, 아니다를 반복했다. 나이키에 마음에 드는 신발이 없길래 우린 아디다스로 자리를 옮겼다. 아디다스에서 어떤 여성분을 만났는데 가이드님끼리 아는 사이 같았다. 그때부터였나. 내가 끼기 힘든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가이드님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세대차이가 역으로 느껴졌다. 어떻게든 대화를 비집고 들어가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성분과의 기나긴 대화를 마치고 영화를 보러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귀엽게 생긴 프랑스 여자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전화번호를 딸까 말까 1초에 100번을 고민하고 있는데 나타난지 얼마 안돼서 그녀가 사라졌다. 언젠간 다시 보겠지.

버스에서 내려서 여성분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영화를 보러  가려하는데 시간을 다시 확인해보니 영화 시간이 맞지 않았다. 영화 계획은 취소되고 곧바로 저녁식사를 먹으러 갔다. 쌀국수를 먹었다. 그 비싼 물가의 파리에서 먹는 쌀국수는 한국보다 쌌다. 한국은 쌀국수를 금으로 만들어서 비싼가 보다. 쌀국수를 계산하려고 했는데 최준호 가이드님이 옷을 뒤적뒤적 거리더니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다. 근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갑 안에 교통카드, 돈  조금밖에 없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소매치기는 파리에서 생활이었다. 20년 파리에서 산 사람도 소매치기를 당하는데 아는 동생이  소매치기당한  것쯤이야 뭐 크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마시러 가서 최준호 가이드님이 내가 신학생인 것을 아시고 이용규 가이드님과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셨다. 뭐 얼마나 배웠다고 얕은 지식으로 대답하긴 했는데 썩 대답들이 시원하지가 않다. 모른다는 답변과 없다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나도 답답하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프린트를 하러 온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일찍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한지 10분 정도 있자 손님이 와서 프린트를 했다. 방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프랑스에 사는 예원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이용규 가이드님과 예원 누나는 가까이 살았다. 예원 누나를 볼 생각에 기대가 됐다. 예원 누나를 만났는데 누나가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이런 격한 반김이 얼마만인가. 누나에게 너무 고마웠다. 누나와 가이드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지하철 역 앞에 노숙하시는 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 번은 노숙하시는 분의 침대 매트리스가 없어져서 누군가 훔쳐가거나 장난을 쳤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근데 알고 보니 정부기관에서 매트리스를 가져가 세탁을 해주고 항균처리까지 해서 노숙자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노숙자를  쫓아내기는커녕 노숙자의 복지까지 생각해서 이것저것 많은 혜택을 주고 있었다. 이 나라는 노숙자, 불법체류자 등의 소수에 대한 인권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파리에 오기까지 있었던 여행 이야기와 파리에서 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실컷 수다를 떨다가 이용규 가이드님이 우스갯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냥 여기서 가이드로 일해." 나를 반겨주는 누나와 파리에서 살면서 일을 하라는 가이드님과 함께 카페에 있으니 마음이 꽤나 따뜻했다. 여행기간이 어느덧 50일에 가까워지는데 작년에 떠났던 여행은 50일쯤 됐을 때 외로움이 극에 달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그렇지 않다.

오늘은 파리에 사는 한국인의 일상을 여행했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항상 낭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던 파리도 현지에 사는 사람들과 같이 일상생활을 보니 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거리에 무릎을 꿇고 구걸하는 여인, 답답한 직원, 소매치기, 지하철역에서 나는 지린내. 아름답기로 유명한 파리에서도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과 힘든 현실이 존재하는데 어디인들 안 그럴 수 있을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파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워낙 아름다운 것들이 많기도 하지만 여행자의 시선으로 내가 파리를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 충분히 낭만적일 수 있는 인생을 현실로 오는 것들로 인해 척박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 오늘을 부지런히 살고 주어지는 것들에 감사하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성숙한 시선을 완성해가는 일이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많은 곳들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입을 여는 대신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성숙한 눈을 뜨고  또 다시 일상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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