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에서의 노숙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by 이서준

마사다에서 내려와 쿰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더위를 먹어서일까 몸도 축 늘어졌다. 태양이 점점 강해져 정말 나중에는 태양이 무서울 정도가 되었다. 광야에서 태양은 두려운 존재이다.

IMG_4998.JPG

시원한 에어컨을 만끽하며 버스 안에서 조금 졸았다. 졸면서 드는 생각은 이대로 그냥 예루살렘 숙소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었다. 마사다 트래킹도 안되고 캠핑도 안되고 쿰란에 왔다가 다시 마사다로 가서 아침 트래킹을 하자니 버스시간을 모르겠고 해서 그냥 숙소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해보니 여기 온 목적은 휴양이 아니었다. 분명 나는 쿰란 사람들이 느꼈던 그 무언가를 현장에서 느끼고자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쿰란에서 미련 없이 내렸다.

IMG_4991.JPG

내리고 3초 만에 후회했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특히나 태양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거기다가 나는 쿰란 박물관을 오려고 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쿰란 국립공원이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이런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조금 더 걷다 보니 쿰란 유적이 나왔다. 알고 보니 쿰란 국립공원 안에 쿰란 박물관이 있었다. 전에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여기가 국립공원 안에 있는 유적지라는 것을 몰랐었다. 선글라스가 너무 뜨거워져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속눈썹을 지나 눈동자로 들어가던 찰나에 에어컨이 틀려져 있는 마켓이 눈에 띄었다. 나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막의 여행자처럼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마켓에 들어갔는데 웬 아줌마가 사해 제품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핸드크림이나 풋크림 안 필요해? "이 아줌마가 지금 내 몰골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할 힘도 없었다. 그냥 에어컨에 땀을 말리고 쿰란 유적지로 향했다.

IMG_5002.JPG
IMG_5028.JPG

쿰란 공동체는 할라카 공동체라고도 불린다. 할라카의 뜻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제사장 직을 맡고 있던 사독 사람들이었는데 하스모니안 왕조 때 하스모니안 사람들이 제사장직과 정치를 겸해서 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여 떨어져 나온 무리들이다.

IMG_5012.JPG

쿰란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쓴 성경 사본 때문이다. 흔히 맛소라 텍스트라고 불리는 이 사본은 그동안 우리가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칭하고 번역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본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규칙적인 일과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필사였다. 비로소 지금까지 나온 성경 사본 중에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성경의 원본은 없다.)

IMG_5011.JPG

맛소라 텍스트는 이 지역명을 딴 것이다. 어느 날 한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다가 해가 저물어 머물 곳이 필요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늑대나 맹수가 있을지 몰라 동굴 안으로 먼저 돌멩이를 던져보았다고 한다. 근데 돌멩이를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소년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니 동굴 안에는 두루마리가 담긴 항아리가 있었고 바로 이것이 맛소라 사본인 것이 나중에서야 밝혀졌다.

20150714_181146.jpg

근데 여기 와서 직접 보니까 꾸며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양들을 데리고 이 높은 바위산까지 올라오는 것도 그렇고 다른 동굴에서 충분히 잘 수 있는데 굳이 저렇게 떨어져 있고 높이 있는 동굴에서 자려고 했다는 얘기 자체가 조금 이상하다. 나는 그 동굴 안에서 캠핑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길래 옆에 있는 동굴에 왔다. 정확히 말하면 큰 바위들로 둘러싸여 있는 암석지대에 와있다. 개미들이 조금 많다는 것 외에는 잘 만한 곳이다.

20150714_175418.jpg
20150714_175322.jpg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봤는데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도 한참이나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며 한국에서 가져온 건빵과 피타(빵)를 물과 함께 먹었다. 너무 더운 나머지 벌컥벌컥 마시는 바람에 2리터짜리 얼음물이 미지근한 500ml 물로 변해있었다. 가져온 초코바는 이미 액체상태가 돼버린 탓에 밤이 되어 다시 굳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IMG_5044.JPG

쿰란 사람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쫓겨 마사다로 도망을 칠 때 가져갔던 것은 성경 사본이었다. 미쳐 가지가지 못한 것을 여기에 숨겨놓긴 했지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선순위 0순위는 성경이었다. 그들은 그 무거운 성경 두루마리를 들고 4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성경은 지금처럼 흔하고 싼 존재가 아니었다. 성경 필사본은 일일이 손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경 필사본이 비싸다는 이유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아무리 비싸도 죽기 이전에 챙겨할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큰 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성경을 사랑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성경필사와 노동이었다. 철저한 반복과 집중의 값진 결과가 바로 그들의 성경이었다. 밤낮으로 성경과 씨름하고 고민하며 번역한 그들의 성경을 어떻게 죽음 앞에 내팽게치고 가버릴 수 있겠는가.

제사장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스모니안 왕조로부터 떨어져 나온 쿰란 공동체. 그들은 이처럼 성경을 사랑했다. 제사장이 되고자 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성경을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고 챙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어느새 하늘을 보니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작가의 이전글인간으로서의 죽음, 마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