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준 Mar 29. 2016

모든 순간이 벌써 여행이었다.

대학교 졸업식에서 망한 폴라로이드 사진장사

 폴라로이드 사진을 파는 소식이 여기저기 전해지자 사람들의 조언이 뒤따랐다. 오랜만에 전화가 온 친구는 내게 학사모 머리띠를 팔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주었다. 졸업식 때 학사모 때문에 머리가 눌려서 싫다는 졸업생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모 모양으로 된 머리띠를 팔았고 하루 매출 수백만 원의 이익을 올렸다는 얘기였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학사모 머리띠를 찾아보았다. 학사모 머리띠를 판매하는 사람과 연결해보고자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 팔려고 해도 그쪽에서 특허 신청을 해놓은 상태였다. 또 만든다 한들 그 정도의 퀄리티가 나오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학사모 머리띠를 포기하고 폴라로이드 사진 장사로 졸업식을 노려보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모든 학교의 졸업식을 뒤져보았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졸업식 날짜를 체크했다. 가장 이른 날짜에 있는 졸업식은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였다. 


나는 카메라와 필름을 들고 중앙대학교로 향했다. 중앙대학교는 꽤나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졸업식 일정과 위치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졸업식 당일이 되었고 같이 장사하는 친구들이 조금 늦게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샘플사진을 촬영했다. 졸업하는 학생들은 샘플사진 촬영에 친절히 응해주었고 나는 샘플사진을 앤틱 한 나무보드에 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보통의 사진기사들은 나이가 많은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였는데 내가 이상하게 생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니 졸업생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처음엔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여행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기에 자신감 있게 다가갔다.

졸업식 장에는 그 학사모 머리띠를 파는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장사가 안되는 듯했다. 대신 사진 장사가 굉장히 잘 되었다. 한번 밖에 없는 졸업식이라서 그런지 5만 원이 넘는 큰 돈을 지불하고 전문 사진기사에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망했다. 수시간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홍보했지만 큰 카메라의 비주얼에 밀려서 몇 장 찍지 못하고 돌아왔다. 


며칠 뒤, 경희대학교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경희대의 캠퍼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의 캠퍼스였다. 캠퍼스가 아름다워서 그런지 중앙대학교 때보다 폴라로이드 사진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 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았다. 

경희대학교에서 장사를 끝내고 외대를 다니는 친구 지훈이와 같이 밥을 먹었다. 러시아 여행 중 만난 프랑스 친구가 예전에 외대에서 6개월 정도 살았는데 학교가 정말 소박하다고 내게 말한 기억이 났다. 프랑스 친구의 말을 기억하며 외대를 구경하는데 프랑스 친구의 말이 맞았다.

경희대학교에서 장사를 마치고 서강대학교로 갔다. 사진기사들이  바글바글했다. 좁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강대학교에서의 장사도 망했다.

연달아 망하는 장사에 힘이 빠졌다. 열심히 준비한 노력에 비해 나오지 않는 결과가 굉장히 힘 빠지게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답안지를 채점할 때 시험지에 틀린 문제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티켓을 싸게 판다는 여행사가 보였다. 나는 여행사로 들어갔고 어떤 방법으로 싸게 파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 사람들은 뻔한 얘기를 했다. "하나투어나 모두투어 같은데서 사요." 얘기를 더 해보니 별거 없었다. 

여행사를 들어갔다 나와서 그런지 다시 마음이 채워졌다. 여행을 떠난다는 희망을 갖고 다시 힘을 냈다. 목적을 분명히 하니까 실패도 하나의 양분이 되는 것을 느꼈다. 비행기를 탄 그 순간 여행을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준비하는 모든 순간이 벌써 여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