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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압록강 철교에서 만난 북한 녀자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무너진 다리, 압록강 철교>

 점심시간이 막 끝날 무렵, 압록강 철교에 걸어왔다. 다리를 건너는데 보이는 부유물들과 신의주 북한의 모습이 군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의 끝이 보였다. 다리의 끝은 흉물스럽게 무너져있었다. 건너편에 있는 북한을 바라보았다. 보여주기 식으로 설치해놓은 수영장과 대관람차가 그 내부는 얼마나 척박한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북한 노래인 '반갑습네다.'가 들려왔다. 옆에는 쌍안경이 있었다. 쌍안경을 보려 하니 뒤에 앉아있던 중국 아줌마가 돈을 내란다. 연달아 북한 담배, 돈 등을 꺼내며 가격을 말해준다. 실컷 구경하고 고맙다는 말의 "씨에씨에" 한마디 했다.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사람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근데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디선가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들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었다. 그것도 교회에서 나온 한국인 단체관광객이었다. 다들 도착하자마자 사진 찍기 바빴다. "이집사님 김권사님 저쪽에 서보세요."라고 하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사람들이 수십 명쯤 몰려들었을 때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다들 내 부모님 같은 마음에 사진을 단체사진을 자처해서 찍어주었다. 사람들은 고맙다고 했다. 근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

"어이!" 그리곤 내게 사진 좀 찍어보라며 카메라를 주었다. 조금 황당했지만 찍어드렸다. 그리고 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데 또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우린 안 찍어줘?" 나는 고용된 것이 아니다. 약간의 친절을 베풀었는데 친절은 무례함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시끄러워진 탓에 중국인들이 얼굴을 찌푸린다. 사실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다가 목숨을 잃은 곳이다. 미국인들에 의해 폭격을 당한 다리에 있던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친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최소한 그런 의미를 생각해보는 엄숙한 자리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신나게 찬송가를 부른다. 은혜로다. 주의 은혜 한량없는 주의 은혜!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아까 그 아주머니다. 억눌린 마음 풀고자 온 여행에서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하지만 적어도 여행을 하면서 그 장소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한국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중국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욕하기 이전에 우리의 모습부터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유람선에서 만난 북한>

 압록강 유람선을 탔다. 북한 신의주 사람들이 배구를 하고 있는가 하면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김포 애기봉에서 보던 북한의 모습보다는 훨씬 활기차다. 근데 강가에서 파란 옷을 입은 어떤 소년이 유람선에 타고 있는 우릴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든다.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것일 텐데 왠지 자유를 향한 손짓으로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일까.



 겉으로 보이는 신의주가 아닌 아오지 탄광이나 수용소 같은 곳에 있는 잔혹한 현실은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굶어 죽고 맞아 죽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김포 애기봉에서 근무할 때도 사람들이 배가 고파 도망치다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다. 또 한 겨울의 추운 날씨에 난방도 안 되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고, 겨울이 지나고 나면 무덤의 개수가 늘어나 있는 북한의 모습 또한 보았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군인들은 배가 고파서 민가를 습격하고, 민간인들은 배가 고파서 나무껍질을 벗겨먹는데 그것마저 부족하다. 상위 1%가 상당 수의 부를 차지한다. 나머지 사람들의 현실은 말 그대로 똥꾸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지하에서 몰래 숨어 예배하는 교인들은 일가족이 모두 몰살당하고 고문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도한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선전용으로 드러나 있는 북한의 교회는 '기승전 김정은'으로 세뇌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아픈 현실이 활기차 보이는 신의주 건너편의 모습을 그리게 만든다. 


<북한 여자와 평양랭면>

 북한 여자는 예쁘다. 또 참하다. 앞으로 이상형은 북한 여자로 해야겠다. 그런데 쑥스러움이 많다. 단동에는 3-5년 정도를 단동에 나와 살면서 북한 음식점에서 일하는 북한 여자가 많다.  그중 한 명에게 말을 붙여보았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척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도망간다. 길거리에서 뽀뽀를 하고 있는 중국 커플을 보며 얼굴이 빨개지며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 청년들


나는 한국음식점 한 곳에 들어가서 일부러 말을 많이 시켜보았다. 말투가 신기하기도 했고 예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신비해서였다. 동무, 동무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북한 여자들은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 평양 고려관이라는 큰 음식점은 아예 사진 찍는 것을 금지시키고 만약 찍게 되면 둘러싸서 삭제를 요구할 정도로 사진 찍히는걸 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긴 했지만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돼서 평양을 올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중국 땅에서 중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가 없었는데 북한 사람 하고는 아무런  문제없이 대화가 가능하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보단 마음 한 구석에 같은 나라 사람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아 빨리 통일이 왔으면 좋겠다. 



평양랭면은 어떤 맛일까. 한국에서 평양에 갔다 온 목사님들 얘기 들어보면 평양랭면은 맛도 없고 밍밍한게 실망이 크다라는 식의 얘기를 들었다. 이것은 과연 진실일까? 나는 평양랭면을 한번 먹어보려고 평양 고려관이란 곳에 찾아가보았다. 근데 그곳은 음식이 코스요리로 나오고 뭐 공연도 보여준다니까 나 같은 가난한 여행객들은 부담스러워서 가질 못했다. 대신에 고려 향이라는 북한 식당을 왔다. 주문한지 10분 정도 후에 평양랭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가위를 달라고 했는데 직원이 말하길 면을 가위로 잘라먹으면 오래 못 산다고 했다. 뭔 소린진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까 그냥 끊어먹었다.



평양랭면은 매콤하고 시원시원한 맛이다. 조금 과하다면 짜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하지 않다. 평양랭면에 매우 만족해서 메뉴판을 들고 하나를 더 주문했다. 그것은 강냉이 온면이었다. 강냉이 온면은 이름은 온면인데 실제로는 열면이다.(뜨겁다) 맵고 뜨거운데 면을 강냉이로 만들어서 고소하다. 부산 밀면을 라면처럼 만들었다고 하면 표현이 맞을까? 국물 맛이 깔끔하다.





음식점을 나와서 걷다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쿵후같이 보이는 무술 동작을 동시에 하기도 하고 부채를 들고 춤을 추기도 한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괜히 내게 말을 걸어본다. 중국어라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옆에 있는 아저씨와 함께 내게 쿵푸 동작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쿵푸 동작을 알려주시는데 뭔가 조금 어설프다. 길을 계속 걷다보니 아침에 보았던 풍경하고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두운 밤은 낮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새로 세워진 압록강 철교와 무너진 압록강 철교가 극명하게 대비됐다. 어둡고 암울한 과거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오래된 다리와, 밝게 빛나고는 있지만 통제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의 다리가 머릿속에 많은 생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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