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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받는 '칭찬'이 좋았다.

여행을 떠난다.

 떠난다. 우여곡절 많았던 폴라로이드 장사도 끝났고, 여행 가는 내 발목 잡고 지루하게 늘어졌던 기말고사도 끝냈다. 이제 진짜 떠난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여행이고 꿈에 그리던 여행인데 왠지 이번 여행은 설렘보단 두려움이 앞선다. 이상하다.


첫 배낭여행은 30일, 두 번째 배낭여행은 50일, 그리고 이번 배낭여행은 70일이다. 30일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50일은 끝나갈 즈음에 많이 외로웠다. 70일은 어떨까. 그래도 뭐 좋아하는 여자라던가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무엇도 나를 구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유를 느낀다. 근데 나는 이 자유가 이제는 좀 멈춰줬으면 좋겠다. 



나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미덕으로 배우면서 자랐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우셨고,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신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뿌듯함을 가져다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거리에 엎드려서 100원만 달라고 하던 노숙인에게 내 오락실 갈 용돈을 모아서 준 기억이 아직도 난다. 어머니께서는 그 일을 두고두고 칭찬하셨다. 마음이 뿌듯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회에서 중국, 아프리카, 카자흐스탄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힘든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같은 나이인 저 친구는 그날 먹을 걱정을 하는데 나는 학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현실이 벌어지는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기에 몸소 실천해보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스스로도 뿌듯한 일이었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모태신앙에 미션스쿨에 교회  회장단까지 하는 영향이었을까.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많은 철학자를 배우고, 훌륭한 사람들을 공부했지만 나는 예수가 제일 좋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기적을 일으켰다. 그는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고치고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했다. 신학교에 가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갔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더 많은 봉사활동을 다녔다. '봉사활동을 다닐수록 봉사가 내 적성에 맞는구나.   행복하다.'라는 등의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신학교 자체는 그렇게 큰 흥미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잘 안 했다. 재미없었다. 평점 4.0 만점에 2.9를 받았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여행을 다니고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고, 몸소 체험하는 경험들이 공부를 재밌게 만들었다. 바닥을 치던 성적은 2.9에서 3.9가 되었고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졸업할 때가 다가와서야 다시 한번 신학교에 왜 입학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목사님들이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바라본 목사님은 여기저기 초대받아서 해외도 공짜로 다니고 좋은  말씀해주시면서 돈도 벌고, 부족함 없이 좋은 옷, 좋은 차,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그 부분을 보고 입학했다. 나는 속물이다.

 

그동안 다녔던 봉사활동은 잠깐 참으면 그만이고 이벤트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칭찬과 인정이 잠깐 고생한 것에 비해 컸다. 최근에 들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 본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받는 칭찬이 기뻤다. 가슴이 아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핑계를 조금 대자면 나는 완전한 속물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본질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엎드려 기도하는 약자의 모습일까. 아니면 회당에서 손을 벌리고 자랑하듯이 기도했던 위선자들의 모습일까.

여행해서 뭐하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여행하면 뭐가 남냐는 식의 질문이다. 그래서 뭐가 남는지 보았다. 사진 몇 장과 인간관계 그리고 추억. 조금 더 생산적인 여행 방식을 만들어보고자 이것저것 많이 시도를 했다. 근데 잘 되진 않았다. 나보다 잘난 것 없어 보이는데 유명해져서 책도 내고 돈도 벌고 강연도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질투 났다. 솔직히 부러웠다.

여행은 나와의 대화이다. 여행은 무엇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소중 한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내게 있어서 끊임없는 대화가 될 것 같다. 긴 기간 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다.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다. 


여행이 시작된다는 것은 일상의 생활이 끝났다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것들이 기대가 된다. 특별하고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올 것이며 때로는 예고치 않은 외로움이 내게 찾아와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여행이다. 다가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의 여행을 시작하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하러 이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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