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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너 그 푼돈 벌어서 뭐할거냐?

여행가요.

 24살 겨울부터 여름까지 한창 시린 옆구리를 부여잡고 여행이란 꿈을 향해 달렸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로 시작해서 정동진, 남산타워, 인사동, 각종 대학교 졸업식,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102 보충대 앞, 북촌 한옥마을, 덕수궁 돌담길, 남산 신세계백화점 가로수길, 여의도 벚꽃축제까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여행 비용을 모았다.


단속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욕과 눈치를 봐야 했고, 신학교를 다니는 나에게 "너 교회에서 일 안 하고 왜  뻘짓거리하냐?"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장사를 하면서 나는 내 손으로 번 돈을 교회에 십일조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고 대단한 용기인지에 대해 새삼 느꼈다. 십일조는 "믿음 좋은 사람은 십일조를 내야 합니다!" 하고 쉽게 걷어서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쉽게 쓰는 돈이 아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올바른 곳에 쓰여야 한다.   


'너 그 푼돈 벌어서 뭐할 거냐'는 조롱 섞인 비웃음도 있었지만 묵묵히 참았다. 아무리 푼돈일지라도 내 땀과 수고가 배어있는 돈이기에 소중했기 때문이다. 티끌 같았지만 여행을 갈 수 있는 마중물과 같은 돈이었기에 차곡차곡 모았다. 여행을 갈 수 있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값졌던 것은 내 여행을 응원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겨울 장사를 세네 시간 하고 있으면 손이 굉장히 시리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 일부러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는 이미 손이 얼얼하다. 그런데 그럴 때 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 중에 내게 고생이 많다고 커피도 사주고 쌍화차와 율무차, 유자차를 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진 값은 고작 해봐야 2-3천 원이지만 인사동에서 파는 쌍화차 같은 경우에는 6천 원이 훌쩍 넘어버린다. 이럴 때 마음이 정말 따뜻했다. 이익관계를 뛰어넘은 배려는 힘든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따뜻함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군부대 앞에서 받은 커피>

추운 날 고생한다며 손에 핫팩을 쥐어주던 손님들도 있었다. 핫팩을 쥐어주고 카메라에 대해 물어보다가 여행 준비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힘내라며 용돈을 주고 가는 직장인 아저씨도 있었고,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인사동 거리에서 프리허그를 하다가 내게 다가와 프리허그를 해준 여학생도 있었다.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에서는 본인들이 촬영할 단편영화에 내가 장사하는 모습을 담아가기도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면서 여행 자금을 모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세상에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글에는 모두 적지 못했지만 수 많은 에피소드들이 벌어지면서 지루할 틈이 없게 해주었다.


사진을 찍는 고객은 꽤나 다양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끼리 우정사진을 찍기도 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커플룩을 입고 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커플들이 사진을 찍는데 수줍어하길래 키스 사진을 찍게 했는데 알고 보니 첫 키스였던 사람도 있었고, 첫 휴가를 나온 군인이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마지막 휴가 때 묵직한 병장 계급장을 달고 나와서 동기들과 찍은 사진, 근무 철수하면서 사진을 찍는 의경 등 나라를 지키는 고마운 군인들도 있었다.  난생처음 한국을 와본다는 중국, 일본, 독일, 미국 등 외국인들도 사진을 찍고 갔다. 북한에서 온 새터민, 길거리에서 기타 공연을 하던 한국인 여자친구를 가진 영국인 등의 사람들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갔다. 금방 생겼다가 사라지는 디지털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지갑에 꽂고 오랫동안 볼 수 있는 한 장의 추억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꽤나 행복했다. 

가끔 화장실 다녀온다고 하고서 쌈짓길 위에서 쳐다본 친구의 모습이 고맙고 멋있었다. 혼자였다면 결코 해내지 못할 것들을 같이 하면서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따금 쌈짓길을 걸으면서 여자친구랑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도 여자친구는 없다.

마지막 폴라로이드 장사를 하고 쌈짓길 위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준비할 때가 왔다.







"여행을 그렇게 다녀서 얻어지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참 어렵다. 이렇게 저렇게 설명해보아도 공감되지 않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헛수고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각자의 다양한 여행이 있는데 내 여행으로 상대방의 여행을 판단하는 것도 어리석다. 

내게 돈이 많다면 여행을 해서 얻어지는 게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그냥 조용히 그날 저녁 비행기를 태워서 다른 나라로 보내주고 싶다. 돌아올  때쯤이면 그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슴에 품고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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