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 아닐까?

나는 지금 믿을 준비가 되어 있나

by 석희

여러 관계 속에서

경험해 보지도 설명을 충분히 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정보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물어볼 수 있는 전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에는 내 판단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누군가의 판단을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다.

아직 충분히 보이지 않는 방향을 따라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완벽히 이해하기 전에

먼저 믿어야 하는 순간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주인공 로빈 윌리엄스는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그것이 신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신뢰를 확신이 생긴 뒤에 따라오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검증하고

이해하고

납득한 다음에야

비로소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르는 영역에서는

일단 의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신뢰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오히려 신뢰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먼저 선택해야 하는 태도에 가깝다.


특히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조직에서는 더 그렇다.


검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믿는다”는 선택은

순진함이 아니라

속도를 만들기 위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사람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함께 일하기로 선택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뢰가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증이 끝난 뒤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내가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조직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한때

신뢰라는 것은 결국 역량을 확인한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함께 일하던 한 팀원이 있었다.


패션과 유통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트렌드나 새로운 업체를 만나는 일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업체를 발굴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이어 갈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부족한 점이 먼저 보였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조직의 리더로서

이 사람과 어떻게 함께 일을 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한 가지를 정했다.


부족한 점보다

잘하는 점을 먼저 보기로 한 것이다.


작은 부분이라도

잘한 일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 팀원도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팀원은

신규 업체를 직접 만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매뉴얼을 만들고

업무를 구조화하고

시스템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밖에서 새로운 업체들을 만나고

그 팀원은 안에서 입점 과정과 업무 흐름을 정리했다.


내가 했다면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을 일들이

그 문서 하나로 한 번에 정리되었다.


그 일을 보며

신뢰는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는 어느 한쪽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신뢰에 움직였던 경험도 있다.


한 번은

리더와 함께 큰 행사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형식적인 절차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힘을 쏟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리더의 태도는 조금 달랐다.


누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본인이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식으로

조용히 일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세상이 내가 생각한 대로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느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판단이

생각보다 얕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해하기 어려운 업무가 오더라도

일단 해 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그 리더도 다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신뢰는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주 이 브런치에서 언급하는)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드라마 미생 속 장그래(임시완)와 한석율(변요한)

신입사원 한석율은

현장에는 안전화를 신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현장에 답이 있고 그들만 노력하는 것처럼 비추며

본사는 그 노력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또 다른 신입 장그래는

본사 사람들도 슬리퍼를 신고 상사/해외 바이어들과 상대하는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조직은 어느 한쪽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도 필요하고

본사도 필요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옳은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을 신뢰하는 일이 아닐까?



나는 이 지점을 생각하다가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이 말한 신뢰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

그는 신뢰를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고 설명했다.


경영진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하고

구성원은 보이지 않는 판단을 믿는다.


신뢰는 증명된 뒤에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함께 건너가기 위해

먼저 만들어지는 조건인지도 모른다.



결국 신뢰는

힘이 센 사람 혹은 의사 결정권자만이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이 만드는 것 같다.


신뢰는 받을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건네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확신이 생긴 뒤에 따라오는 결과라기보다

함께 움직이기 위해 먼저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먼저 믿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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