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모래를 놓지 못할까?
어렸을 적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옆에서 손에 모래를 갖고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 기억으로 모래를 한번 한 움큼 쥐어 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이 잡힌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래는 조용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신기한 건 더 세게 쥘수록
모래가 더 빨리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사람이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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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것을 보통 기회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은 단순한 기회라기보다
어떤 생명력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은 유난히 재미있다.
힘든데도 계속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그 일을 하면서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감각을 이해하기 쉽다.
마치 퀘스트를 하나씩 깨 나가는 삶 같기도 하다.
캐릭터의 HP(Health Point)처럼
어떤 일은 나의 에너지를 조금씩 깎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나는 그런 상황을
‘손 안의 모래를 잡고 있는 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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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래는
아무리 꽉 쥐어도 조심스럽게 핸들링할지라도
결국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처음에는 많이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빠진다.
그러다 보면 손 안의 모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이며 새로운 모래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은 그렇게 쉽게 행동하기가 어렵다.
모래를 새로 잡는다는 것은 익숙한 상황이 아닌 내가 새로운 상황으로서의 도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모래가 빠질수록 오히려 손을 더 꽉 쥔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미련,
그리고 무엇보다
놓았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모래는 더 세게 쥔다고 해서 남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빠져나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찌꺼기 같은 모래만이 내 손에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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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나이가 들어 허리가 점점 굽는 노인분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변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자세가 몸에 남는다.
어쩌면 손을 오래 쥐고 있는 일도 그와 비슷한 일인지 모른다.
현실에서 모래를 놓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꼭 이직이나 창업 같은 거창한 결정으로서의 새로운 환경으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환경(조직, 가정 등) 안에서도
익숙한 방식을 바꾸는 일,
지금까지 해 온 생각의 패턴을 내려놓는 일,
생활의 리듬을 새로 만드는 일.
이 역시 손에 쥐고 있던 모래를 내려놓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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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최진석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일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손에 쥔 모래를 떠올렸다.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문제는 그 ’ 순간‘이다.
모래를 놓는 그 짧은 순간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공백, 즉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그 짧은 순간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줄줄 빠져나가고 있는 모래를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잡아야 한다. 판을 새로 짜야한다.
어쩌면 기회란 더 강하게 쥐는 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놓을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모래일까,
아니면 이미 빠져나간 모래의 기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