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ellence is never an accident.
나는 사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본 작품들이 몇 편 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억지로 울리려 하지 않아도 울리고, 과장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왜 이 드라마들은 이렇게 특별할까? 곱씹어 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미생』,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였고,
모두 김원석 PD의 작품들이었다.
이야기가 엄청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장면들이 서로를 설득하며 이어진다.
하나도 뺄 이야기가 없다.
나는 그 힘이 결국 엄청난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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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장그래만 기억하지 않는다.
한석율의 현장을 중시하는 어설픈 자신감,
장백기의 엘리트 코스를 달리고 싶은 날 선 자존심,
안영이의 신입사원 같지 않은 단단한 태도,
오 차장의 체념과 현실 감각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원인터내셔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옆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처럼 느껴진다.
복사기 옆 탕비실에서 커피 믹스에 홍삼을 타 먹는 직장인들.
간결한 보고서를 위해 문장을 몇 번이고 고쳐 쓰는 시간.
동기끼리, 팀끼리, 전무와의 회식 자리 각각의 다른 공기까지 모두 살아 있다.
이건 주인공과 그 주변인 몇 명 만의 힘이 아니라,
작은 인물들을 허투루 다루지 않은 선택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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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와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단역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는다.
동훈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조기 축구를 하던 후계동 친구들이 없다면
그의 삶의 무게는 그렇게 설득되지 않는다.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정희네 술집.
말없이 소주잔을 채워주고, 굳이 위로하지 않으면서도 곁을 지키는 사람들.
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장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모여 있는 장면.
설명도 없고 과장도 없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채운다.
현실에서 저런 친구가 정말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내 곁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존재들.
해녀 이모들도 그렇다.
애순이 몸을 풀 때 ‘광례 똘이다‘ 하고 엄청 큰 전복을 아무 대가 없이 전달하고,
오징어 국 장사를 할 때도 자연스럽게 함께 해주는 그들이 단순한 지역적 장식이었다면
그 세계는 그렇게 단단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극적 장치가 아니다. 동훈과 애순의 삶을 둘러싼 배경도 아니다.
동훈과 애순은 그 친구(이모)들 덕분에 버티고, 그 친구들이 있어 숨을 고른다.
그래서 동훈과 애순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어디엔가 실제로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 입체감은 주인공 한두 명의 연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 하나하나를 허투루 쓰지 않은 선택에서 비롯된다.
주인공의 서사는 주변 인물들의 디테일 위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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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결코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요소들, 대부분의 시청자는 그냥 지나칠 장면들까지
몇 번이고 다시 고치고, 다시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시대에 맞는 소품 하나, 직업에 어울리는 말투 하나, 공간의 질감, 조명의 톤, 회식 자리에서의 자리 배치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그런 디테일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고 작은 요소들이 하나씩 쌓이고 또 쌓여
작품 전체에 ‘이건 진짜다’라는 신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신뢰가 시청자를 이야기 바깥이 아니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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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테일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몇 번이고 다시 고치려는 끈기, 괜히 한 번 더 확인해 보는 집요함, 그리고 결국에는 해내겠다는 믿음의 문제다.
아무리 훌륭한 기획이 있어도
현장에서 누군가 “이건 중요하지 않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작품의 결은 미묘하게 어긋난다.
그 어긋남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전체의 신뢰를 조금씩 깎아낸다.
반대로,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가 공유되면
굳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모두가 스스로 긴장하게 된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은 사람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의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식이 팀 전체를 하나로 묶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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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드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브랜드도 그렇다.
로고 하나, 패키지의 촉감, 디스플레이의 완결성,
직원의 그루밍과 어투, 매장에서 흐르는 음악의 장르와 볼륨까지.
그 모든 작은 선택들이 모여 브랜드의 얼굴을 만든다.
브랜드는 광고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서 느껴지는 공기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공기는 작은 디테일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대표의 전략이 아무리 훌륭해도 구성원 한 명이 “내 역할은 크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화의 결은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문화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금전으로만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태도와 시도로 만들어진다.
결국 잘 만들어진 모든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천재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수가 공유한 태도, 작은 것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습관, “나 하나쯤이야” 대신 “나 하나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감각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감각이 브랜드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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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브랜드든 드라마든, 현실의 모든 프로젝트는
절대 주인공 혼자 잘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거의 언제나 틀린다.
성공은 큰 아이디어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완성은 작은 디테일에서 결정된다.
보이지 않는 선택, 굳이 고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장면, 그냥 넘어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한 문장.
그것을 다시 붙잡는 사람들 때문에 결은 살아난다.
디테일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가 좋을 때, 사람들은 반드시 그 흔적을 발견한다.
아니, 찾아낸다. “이건 뭔가 다르다”는 감각으로.
디테일은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 포기할 뿐이다. 우리가 쉽게 ‘이 정도면 됐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