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觀相)은 과학이다?

좋은 얼굴은 축적의 결과다.

by 석희

요즘 사람들은 TV나 핸드폰 화면에서 뉴스 속 범죄자 인터뷰를 보거나,

이혼 숙려 캠프 같은 사회 이슈 프로그램에서 막장 사연을 접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역시 관상은 과학이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정말 관상이 사람을 말해주는 걸까?

혹은,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관상을 만들게 되는 걸까?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판사 같다.”

“저분은 미술사 교수 같아.”

“저 사람은 굉장히 권위적인 국회의원 같아.”

혹은 “저분은 독립출판서점 대표 같아.” 등등.

재판관들의 사진.. 실제로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짐..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느껴질까?

그 사람의 말투나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는 설명할 수 없는, 내가 생각하는 어떤 ‘결’ 같은 것이 얼굴에 배어 있다.

지역도, 종교도, 국적도 다 다른데…

그 직업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 갖는 어떤 공통된 얼굴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단지 생김새가 아니라, 살아온 방식이 만들어낸 표정, 눈빛, 주름의 방향일 것이다.

아마도 그 사람이 그 일을 오래 하며 ‘되어간 얼굴’이 아닐까.



실제로 이런 생각은 영화 <관상>(2013)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관상쟁이 ‘김내경(송강호)‘이 ‘수양대군(이정재)‘이 주도하는 권력의 음모에 휘말려드는 과정을 그린다.

김내경은 종종 얼굴과 사람의 내면을 연결하는 언급을 하며, 작품 전체가 얼굴 속에 삶의 흔적과 성향이 담겨 있다는 관점을 중심 주제로 삼는다.

영화 <관상>의 포스터

그는 얼굴의 생김새를 넘어서 그 사람이 걸어온 길, 내면에 쌓인 감정과 선택의 흔적을 읽는다.

단순한 외모 해석이 아닌,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로서 본 것이다. 때로는 그 얼굴로 미래까지 읽어 내기도 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맞닿아 있다.

좋은 얼굴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선택한 일, 감당해 온 삶, 쌓아온 태도가 드러난다.



일본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고 불렸던 드라마 <리얼 클로즈>(2009)를 처음 봤을 때,

그 안에 등장한 짧은 대사 한 줄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본 드라마 <리얼클로즈>

파리에서 스카우트된 카리스마 넘치는 상사 진보 미키(구로키 히토미)가 촌스러운 백화점 이불 매장에서 일하는 아마노 키누에(카리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20대의 얼굴은 자연이 준 선물이지만, 50대의 얼굴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증거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스무 살의 얼굴은 부모가 준 얼굴이고, 쉰 살의 얼굴은 내가 만든 얼굴이라는 뜻.


처음엔 드라마 작가의 문장인가 했는데,

찾아보니 그 말은 20세기 패션을 바꿔 놓은 혁신가이자,

지금까지도 ‘패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디자이너인 ‘코코샤넬‘이 한 말이었다.

코코 샤넬 여사의 이미지

샤넬이 말한 “얼굴”은 단지 외모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감정, 선택의 기록이다.

무엇에 분노했고, 어떤 일에 감동했으며,

어떤 관계에 오래 머물렀는지가 얼굴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말을 곱씹는다.

그 사람의 얼굴은, 그가 선택한 ‘일’의 형태와 그 일을 대하는 태도를 비춘다.

드라마 『리얼 클로즈』도 말하듯, 좋은 얼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건 하루하루의 누적이고 축적이다.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일했는가에서 만들어진다.



얼굴은 단순히 잘 관리된 얼굴이 아니다.

의학으로 조작할 수 없는 ‘고귀한 축적’이다.

돈이나 명예, 권력보다도, 오랜 시간 자신의 영역에서 ‘자기답게’ 살아낸 사람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얼굴.

주름 마져도 너무 멋진 배우 ‘숀 코넬리’

그 축적은 ‘노동‘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노동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존재를 증명하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이란, 단지 팔을 쓰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노동, 책임노동, 관계노동…

삶이 요구하는 다양한 에너지 소비의 형태들.


그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은,

그 안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감정을 길들이고 관계를 다지고

자신만의 언어와 세계를 조금씩 세운다.



그 모든 시간이 얼굴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볼 때 얼굴을 본다.

눈빛이 보인다. 감정을 느낄 때마다의 주름의 결이 보인다.


그 사람의 얼굴이 말해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깊이.

증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무게.

기록하지 않아도 남는 흔적.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존경’이라는 감정으로 마주하는 순간의 본질 아닐까.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고귀한 얼굴을 가지는 사람으로.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4화모두에게 환영받고 싶은가, 소수에게 기억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