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환영받고 싶은가, 소수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선택’이 아닌 ‘제외’에서 시작하기

by 석희

누구나 본인 자신 그리고 자신이 만든 브랜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현실적인 성과로 이어지며, 영향력으로 확장되고, 브랜드가 살아남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대중에게 사랑받기 이전에 브랜드가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당신은 모두에게 환영받고 싶은가, 소수에게 깊이 기억되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서 멈칫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고, 그 철학을 행동으로 실현하며, 단단한 팬덤과 긴 생명력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위한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한다


많은 브랜드는 시작 단계에서 자신의 역량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 결과, 누구에게도 깊이 사랑받지 못한 채 정체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타깃팅이 뾰족하지 않으면 브랜드는 다음과 같은 환상에 빠지기 쉽다.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면, 더 많은 사람이 찾고, 매출이 늘고, 시장의 파이를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브랜드의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고객의 충성도는 약해지며, 결국 아무에게도 깊이 사랑받지 못하게 된다.

내가 구매후 읽은 컨셉 수업 책 사진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위해서는 때로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에어비앤비의 “전 세계 어디든 내 집처럼”도, 스타벅스의 “제3의 장소”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결정하는 동시에 어떤 사람이 대상에서 제외되는지를 명확히 드러내지요.


에어비앤비는 호텔 같은 극진한 대접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에서 삼지 않습니다.

스타벅스는 지금보다 흡연자가 훨씬 많았던 1990년대부터 이미 흡연자를 대상에서 배제해 왔습니다. 당시 일본의 카페 문화를 생각하면, 적게 잡아도 주요 카페 이용자의 절반 이상을 무시한 셈이지요.

“모두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아무도 기쁘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열 명 중 한 명이 ‘꽤 괜찮은 가게네. 마음에 들어. 또 와야지‘ 라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경영은 이루어진다.”

– 『컨셉 수업』 호소다 다카히로 저


이 문장들은 모두 불편한 결정을 담고 있다.

매출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누군가는 떠났으며, 시장의 시선은 싸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선택이 브랜드를 ‘신념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각 브랜드는 인지도를 얻고, 회사의 각 파트는 지속적인 개발을 이어갔다.

그 결과 우리는 “대중”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도달했지만, 사실은 80억 인구 중 소수에게 단단히 도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랜드란 결국, 모든 이가 아닌 단 한 사람에게라도 깊이 사랑받기 위한 존재가 아닐까?



용기를 증명한 브랜드들의 선택


1. 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Patagonia) – “사지 마세요”

파타고니아의 NYT 전면 광고 사진

2011년 미국 최대 소비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

모든 브랜드가 세일을 외치며 매출을 극대화하는 시점에 파타고니아는 ‘The New York Times‘ 전면 광고에 이렇게 썼다.


“Don’t Buy This Jacket”


그 밑에는 이 옷(파타고니아 R2 재킷)을 생산하는 데 얼마나 많은 물과 에너지가 소비되는지,

그리고 ‘진짜 필요한 소비만 하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환경을 해치는 과잉 소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연히 일부 고객은 불쾌해했고, ‘너무 도덕적인 척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이후 Worn Wear, Repair is a Radical Act 같은 캠페인을 이어가며

실제로 고객들에게 “제품을 고쳐 쓰는 법”을 교육했다.

심지어 매장 한편에는 리페어 스테이션이 생겼고, 중고 재판매 플랫폼도 공식 운영했다.


마케팅보다 신념을 우선한 이본 쉬나드는, 브랜드를 깊이 사랑하는 팬을 만들어냈다.



2. 마틴 마르지엘라의 MM(Martin Margiela) – 얼굴 없는 디자이너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는 패션계의 거의 모든 관행을 정면으로 거스른 인물이었다.

(한때 나의 꿈 중에 하나는 전 세계 마르지엘라 매장에 다 가보는 것이었다.)

도쿄 에비스의 마르지엘라 매장 사진

앤트워프 왕립학교 출신과 장 폴 고티에의 어시스턴트 출신이라는 정보 외에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한 후에도 극단적인 익명성을 고수했다.


인터뷰도 하지 않고, 커튼콜도 거부했으며, 공식 사진조차 없다.

(추후 아주 나중에 공개가 되긴 했다.)

쇼가 끝나도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언론 앞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디자인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의 이 한 마디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완전히 정의해 버렸다.


이 철저한 익명성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마르지엘라는 패션 역사상 처음으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를 옷에 대입한 디자이너였다.

안감을 겉으로 드러내고, 재봉선이 노출된 옷을 만들며, ‘옷’이라는 오브제를 낱낱이 분해하고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가 선택한 익명성, 해체주의, 불친절함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바로 “디자이너가 아닌 옷(디자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3. 스티브 잡스의 애플(Apple) – 불편함을 견딘 브랜드


스티브 잡스는 제품 하나하나에 철학을 각인시켰던 인물이다.


그의 방식은 언제나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제거하는 것”이었다.

디자인보다 본질, 혁신보다 신념.

잡스는 기술적 진보보다도 사용자의 무의식 속 습관을 깨뜨리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애플은 늘 ‘먼저 제거’ 해왔다.

스티브 잡스와 iMac G3

1999년, 애플은 iMac G3를 출시하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제거했다.

당시 플로피는 여전히 사용되던 저장 매체였고, 시장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하지만 잡스는 이미 시대가 CD-ROM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약 10년 후인 2008년, 그는 세상에 없던 노트북 MacBook Air를 선보인다.

봉투 속에서 꺼내던 장면은 전설이 되었지만, 그 제품에는 CD/DVD 드라이브가 없었다.

심지어 USB 포트도 단 하나. 불친절했다. 하지만 그 ‘비움’ 덕분에 얇고 가벼울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 잡스 사후에 등장한 iPhone 7은 그가 생전 계획해 두었던 또 하나의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 3.5mm 이어폰 잭의 제거.

유선 이어폰에 길들여진 사용자들의 불만은 거셌지만,

그 불편함은 AirPods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애플은 그 불편을 견뎌냈다. 지금의 편리보다, ‘앞으로의 방향’에 집중하여 미래의 기준을 먼저 실현하고, 그에 따른 비판을 감수한 것이다.



4. 더현대 서울(The Hyundai Seoul) – 백화점의 미래를 먼저 열다


2021년, 더현대 서울은 여의도 파크원이란 낯선 공간에 문을 열었다.

대형 오피스, 증권가, 국회와 연결된 입지.

40~50대 여성 VIP가 주로 찾는 백화점의 전통 문법으로 보자면 ‘최악의 입지’였다.

게다가 백화점이라기보다 ‘몰’처럼 생긴 건물에,

대중교통 접근성도 그리 편리하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입점 자체를 꺼렸다.

명품 브랜드는커녕,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들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현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 식품관 중심 전략:

판교점에서 검증된 ‘식품 콘텐츠의 구심점화 전략’을 여의도에서도 전개한다. 단순한 그로서리와 식당가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으로 식품관을 해석한 시도였다.


- 스트리트 브랜드 중심의 MD 구성:

더 현대 서울 : 디스이즈네버댓 매장 사진

디스이즈네버댓, 미스터포터, 나이스웨더, 하이츠 익스체인지, 스틸북스 등 당시에는 서브컬처로 여겨졌던 브랜드들을 중심에 배치했다. 트렌드보다 방향성을 본 시도였다.

- ‘팝업(POP-UP)’을 주 무대로 전환:

기존 백화점이 ‘정규 브랜드 중심, 팝업은 부수적’이었다면, 더현대는 ‘팝업을 메인 콘텐츠로 만든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슬램덩크, 야놀자, 이케아, 심지어 GD(위버맨시)까지… 팝업 자체가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진화했다.


당연히 초반에는 많은 우려와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더현대 서울은 단 1년 만에 업계 판도를 바꿔버린다.

트래픽, 브랜드 관심도, MZ세대 유입, 심지어 매출까지 모두 기준을 넘겼고

더현대 서울 : 루이비통 매장 사진

결국 2023년 12월 루이비통이 입점하면서 더현대는 ‘완성형 백화점’으로 변모한다.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누군가를 제외할 용기가 있다


브랜드는 모두를 만족시키려 할수록 자신을 잃는다.

단 한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어떤 고객을 제외할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브랜드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플랫폼이든 콘텐츠든, 결국 브랜드는 ‘선택의 철학’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철학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길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길이 된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모두에게 환영받고 싶은가, 아니면 단 한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브랜드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욕망은 쉽고 빠르지만, 기억에 남는 존재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 질문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만이

팬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플랫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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