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과 유한계급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리그는 존재하는가?

by 석희

우리는 모두 어떤 리그에 속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들이 속한 리그(League)가 있다.

사회라는 거대한 리그는 마치 축구처럼 층층이 나뉘어 있다.

보통 프로(Pro), 세미프로(Semi-Pro), 아마추어(Amateur)로 이루어지며

약 8부 리그부터 1부 리그까지.

그리고 그 위에 ‘프리미어’라 불리는 상위 0.1%의 세계가 있다.


영국의 축구 리그 구조처럼 말이다.

사자를 모티브로 한 EPL 로고

프로레벨 인 프리미어 리그(EPL), 챔피언십, 리그 1, 리그 2

세미프로 레벨인 내셔널리그 (노스/사우스)

아마추어 레벨인 (노스/사우스/이스미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밑에는 수많은 아마추어 팀과 지방 리그가 촘촘히 엮여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흥미를 갖는 건 언제나 ‘프리미어’의 이야기다.

스폰서가 몰리고, 언론이 집중하고, 온갖 스타플레이어가 본인의 꿈을 펼치는 모두가 꿈꾸는 자리.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그렇다.

누구나 상위 리그에 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간혹, 정말 간혹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말도 안 되는 승격 그리고 인생역전.

그건 우리가 믿고 싶은 가능성이다.



유한계급(有閑階級) — 노동 대신 과시하는 사람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유한계급론』에서 ‘눈에 띄는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개념을 통해 귀족. 왕족. 상류층 계급이 단지 부유한 것이 아니라, 그 부유함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집착한다고 봤다. 목적은 ‘생활’이 아니라 ‘시선’이며, 효율이 아니라 과시다.”

소스타인 베블런과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

그들에게 노동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 대신 더 비싼 옷, 더 느린 스포츠, 더 비효율적인 행동으로

“나는 일하지 않아도 이 정도를 누릴 수 있어”라는 걸 보여줬다.


폴로, 펜싱, 사냥 같은 스포츠가 왜 귀족 스포츠였는가?

그건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기 위해 존재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지 않고 돈을 벌고,

누군가는 노동하지 않아도 그만큼 ‘이미 쌓아온 이미지’로 생존한다.


그럼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이 ‘유한계급’은 진짜 유한한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



상위 리그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나는 이 내용을 조금 비틀어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들이 ‘노동(Labor)’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 일(Work)‘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노동(직장 출근, 시간제 근무 등)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나름의 일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들이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일상의 모든 선택이 정체성을 걸고 이뤄지는 고도의 전략 게임 말이다.


실제로 귀족들은 어린 시절부터 옷 입는 법, 식사 예절, 무도회 준비,

방문객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 침묵의 기술까지 배운다고 한다.

그건 우리가 아는 ‘단순한 여가’만을 하는 삶과는 매우 다르다.

특히나, 자유로운 삶과는 많은 부분 배치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현대의 상류층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 2세, 글로벌 엘리트, 재벌가, 왕족…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루하루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다.



자기 리그를 스스로 바꾼 사람들


제이미 바디.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언더독 스토리 중 하나다.

표효하고 있는 제이미 바디(Jamie Vardy)

(현재는 이탈리아 리그인 SERIE A에 ‘US 크레모네세’에서 뛰고 있다)

그는 10대 후반, 프로에 입단했지만 생계를 위해 치료용 부목 공장에서 일했다.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1부 리그(EPL)에 입성했고, 불과 2 시즌 만에 레스터 시티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30대 초반, 마침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사회에도, 다른 분야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

연예계에선 염혜란이라는 배우가 그렇다. (여기에는 약간의 팬심이 섞여 있다.)

홍자영 검사 역할을 한 염혜란 배우

수십 편의 작품에서 그녀는 이름 없이 얼굴만 비췄다.

때로는 ‘우유 아줌마’, ‘미용실 원장’, ‘푸대 여인 1’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스크린과 무대의 뒤편에서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채워왔다.

그러다 2019년, 《동백꽃 필 무렵》의 ‘홍자영 검사’로 등장하면서

그녀는 단숨에 모두가 아는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단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건 수십 년간의 리그 경기 끝에

마침내 새로운 무대에 도달한 결과였다.


이후 그녀는 《시민 덕희》, 《폭싹 속았수다》 등에서

자신만의 호흡과 얼굴로 장면을 채워가며

꾸준히 자신만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사를 하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염혜란은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우가 되었다.


라미란, 조우진, 박해준, 박명훈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없던 시절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정비했고

카메라가 자신에게 도달할 때를 위해 ‘준비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데 재미있으면서 무서운 것은 상위 리그에 들어갔다고 끝난 게 아니다.

그때부터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상위 리그는 유한하지 않다 — 단지 구조가 다를 뿐


유한계급론은 한 가지 오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상류층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환상.

그건 절반만 맞지 않을까?


상류층은 ‘다른 종류의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애초에 다른 삶의 설계가 필요하다.


위에 언급한 내용처럼 이건 축구도, 연예계도, 패션계를 포함한 이 세상 전체에 마찬가지다.

상위 리그는 유한하지 않다.

거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의 시작점’ 일뿐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 안이 더 잔인해 보인다.

실수 한 번에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고,

영원히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금세 잊히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들을 대체할 사람들은 언제든지 밑에서 바글바글 대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의 리그는 어디인가”


모두가 그 분야의 프리미어 리그를 꿈꾼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가 꼭 정답일까?


진짜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선 리그에서 어떤 플레이를 하고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결국 그런 사람에게 찾아온다.

자신의 리그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묵묵히 경기를 치르는 사람에게.


어떤 분야든, 어떤 환경이든, 어떤 세상이든,

진짜 빛나는 경기는 늘 그런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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