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Creative)’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by 석희

“나는 세상엔 ‘창조(Create)’는 없고, ‘창의(Creative)’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트레바리 ‘어떤 브랜드가 살아남는가’ 클럽을 만들며,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창의성은 정말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오는 걸까?”


대학 시절, 의류학을 전공하며 뉴욕·파리·런던·벨기에의 유명 패션스쿨들을 찾아갔던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은 ‘역사(History)’를 통해 창의성을 길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전공 공부 외에 예술사, 영화사, 음악사 같은 인문학의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확신하게 되었다.


창의란 완전히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는 힘이라는 것.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게 된다.

창의성은 정말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오는 걸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정작 너무 낯선 것 앞에서는 고개를 돌릴까?


《Creative Curve》의 저자 앨런 가넷은 이렇게 말한다.

‘The creative curve’ by Allen Gannet

“익숙함은 안정감을 주고, 새로움은 자극을 준다. 창의성은 이 두 힘 사이의 긴장 속에서 탄생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로도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었다.

‘이 긴장을 유지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모순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한다.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있는 상태를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경험적으로 믿는다.


창의성은 모순을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모순을 ‘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창과 방패, 그리고 콜럼버스의 달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늘 얘기하는 장인정신과 상인정신, 이 두 가지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어떠한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

언뜻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국 그 둘을 함께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마치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존재하는 개념을 뒤집는 순간, 모순이라 여겼던 두 요소는 공존할 수 있는 해답이 된다.

중요한 건 양극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창의적인 균형점을 만드는 일이다.



모순은 충돌이 아니라 긴장이다

미니멀(Jil sander) 와 맥시멀(Gucci)의 런웨이 컷

패션에서 기능성과 감성은 자주 충돌한다.

효율을 중시하는 유통 현장에서는 인간성과 타협해야 할 때가 많다.

디자인에서도 단순함(Minimal)과 복잡함(Maximal)은 늘 경쟁하고,

리더십에서는 단호함과 배려가 서로를 견제한다.


이 모든 ‘충돌’들은 사실, 한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거리의 긴장감으로 공존할 때 가장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브랜드란 결국 그런 모순 위에 서 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싶지만,

정체성만 고집하면 시장은 금세 지루해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혼란이 오지만,

그 혼란을 감내하지 않으면 ‘생명력’은 줄어든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의 불편한 균형,

나는 이 리듬이야말로 창의성의 진짜 ‘자리’라고 믿는다.



관리자와 창의가는 어디서 갈리는가

창의적 리더는 늘 ‘모순’을 안고 간다.

하나의 정답, 명확한 기준, 시스템화된 원칙…

이런 것들을 만들고 싶어지는 순간, 창의성은 조금씩 식는다.


이건 내가 여러 브랜드 기획 회의를 하면서 직접 느낀 것이기도 하다.

효율을 챙기다 보면 감정의 흔들림은 거추장스러워지고,

정체성을 강화하다 보면 실험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결국 브랜드가 죽는 건, 시장의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지 않게 되었을 때다.


운영자(관리자)는 모순을 없애려 하고,

창의가는 모순을 붙잡아 둔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창의성의 연장선 위에 서기


창의성은 어떤 정답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완성되지 않음’의 상태,

‘애매한 진실들’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에서 진동한다.


나는 이 긴장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만 옳다고 믿는 대신,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음을 의심 없이 인정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때로는 모르게 흔들리더라도, 그 진동 속에 머물고 싶다.


결국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항상 옳다’는 확신 대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최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창의성의 연장선,

그리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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