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자산 = 부채 + 자본‘의 공식이 성립할까?

회계처럼 인생을 이해하고 싶을 때 (행복도 장부에 기록된다면..)

by 석희

나이키(NIKE)의 창업자의 자서전 『슈독』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슈독(Shoe dog)과 저자 필 나이트(Phil Knight)

“내가 행복을 바라보는 방식은 회계학의 기본 원리처럼 간단했다.

자산은 부채와 자본을 합친 것이다.”

- 필 나이트, 『슈독』 p.191 -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행복이 회계상 장부에 적힐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는 것도 의아했고, 무엇보다 ‘부채와 자본을 더한 것이 자산’이라는 정의에 감정이 섞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경영학 원론을 배운 사람들에게서의 회계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식이다.

“자산 = 부채 + 자본”

하지만 이 공식이 인생에서 행복이란 단어의 정의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부채까지 포함해, 그게 내 자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부채를 두려워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나는 부채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부채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했고

카드 할부조차 마음 편히 끊지 못했으며,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내가 견디지 못할 지출은 아예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택했다.

빚을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 이미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아마 부모님의 사고방식이 내 안에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미리 쓴다’는 감각 자체가 불편했던 나는

없으면 참는 것이 당연했고,

모험보다 안정, 지출보다 절제를 선택해 살아왔다.

그리고 그만큼 많이 포기했고, 많이 참았다.



하지만 ‘버티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 ’ 성공하는 사람들‘ 곁에서 내가 바뀌고 있다


지금 아직도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내 주변에는 다양한 사업을 하는 친구/지인들이 있다.

의류, 코스메틱, F&B 브랜드 외 부동산, 각종 대행사 등등…

겉으로 보기엔 다들 문제가 없고 소위 말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겉보기와 달리 훨씬 어려웠다.

누구 하나 대출이 없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안 쓰는 사람이 없었다.

현재는 아닐 수 있으나,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부채를 감당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직원 월급을 맞추기 위해 차를 팔았고, 또 다른 친구는 경영난으로 직원의 절반 이상을 구조조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다들 그들 스스로를 믿으면서 비슷한 말을 한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언젠간 이건 내 자산이 될 거야.”


그리고 나는 또 한 명의 친구를 기억한다.

지금은 연 매출 1,500억 원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초창기 마지막 통장 잔고가 500만 원이었고,

그마저도 바닥나면 대리운전을 하러 나설 생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대리기사로 일하며 한 달에 1천만 원 이상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이라도 있다면 나는 버틸 수 있다”라고 말하던 그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내게 강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모든 사람이 부채를 짊어지지만,

결국 그 부채를 감당할 ‘마지막 근육’을 남겨두었던 사람이 자산을 만든다는 걸 나는 그를 통해 배웠다.


결국 그들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을 믿고,

그 자본을 ‘버티는 근육’을 매일 키워가고 있었다.

버티면 기회가 온다는 아나운서 ‘강지영’의 말


사업은 위험한 게임이다. 하지만, 직장인의 삶은 정말 안전한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이 말들은 흔히 창업자 및 사업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좌우명이다.

실제로 사업은 망하면 끝나는 게임(End Game)이다.

대출을 못 갚으면 파산이고, 직원들 월급 및 업체 대금을 못 주면 여러모로 신뢰도도 무너진다.


하지만 그러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하는 직장인들은 리스크 없이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인의 삶은 겉보기엔 안정적이다.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결정은 윗선에서 내려온다.

아마도 단기적인 손실은 거의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안정이

‘내 자아의 부채’로 남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견을 내도 반영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우선되며, 스스로가 점점 ‘소모품’처럼 느껴질 때.


회사 내에서 잘릴 위험은 적지만,

내 안의 자아가 조금씩 말라가는 리스크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걸 ‘자아의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조금씩 적자가 쌓이고 있는 삶.


그리고 그 적자를 방치한 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완전히 고갈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버틴다고 말하면서도, 아내와 자식에게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부자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행복을 자산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 자산은 단지 ‘돈’만을 의미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재벌, 연예인 등)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본 많은 대부분의 부자들, 혹은 성공한 사람들조차 때때로 그 누구보다 공허하고, 더 많이 비교당하고, 더 자주 자존감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산은 곧 ‘자기 자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이름 아래 소속돼 안정적이라 느낄 수는 있어도, 자신이 하는 일에서 ‘쓰임’이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 그는 이미 자아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내가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

다른 누군가보다 뒤처졌다고 느낄 때,

그 누구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한 사람조차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 자본의 잠식’을 겪는다.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내면의 자산(자존감, 정체성, 자기 확신 등)이 지속적인 심리적 부채(비교, 무기력, 자괴감 등)에 밀려 마이너스가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고,

내가 나 자신을 지탱할 힘이 지속적으로 무너지는 상태다. 수치로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깊은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산 = 부채 + 자본’이라는 공식은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설득력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감당 가능한 부채를 질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일


나는 이제 부채를 완전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적어도 예전처럼 무조건 내가 갖고 있는 부분에서만 써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부채라면,

그건 언젠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보다는 일단 경험에 비추어 시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대출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말 못 한 꿈의 무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자본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일이다.

모든 일에는 그에 따른 결과와 책임이 따른다.


그 자본은 지식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믿음직한 인간관계나,

스스로를 향한 확신일 수도 있다.



결국 행복이란


행복은 감당 가능한 부채를 짊어질 수 있는 자본을 키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본이 클수록, 우리는 더 많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부채까지 끌어안고 “이게 나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자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필 나이트의 그 문장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자산이란,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채 위에 쌓아 올린 삶의 무게라는 것을.

그리고 그 무게가 나를 증명해 주는 방식이라는 것을.


“자산(행복) = 부채(꿈) + 자본(경험/지식)


이건 단지 회계의 공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은유이며 철학이라고 다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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