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전문가‘가 되어가는가
익숙한 반복이 능력을 만들 수 있을까?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이 2008년 발간한 『아웃라이어 Outliers』의 이 명제는 오랜 시간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였다.
그렇다면 정말, 그만큼의 시간을 쓴 우리는 모두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침마다 도로 위에는 수많은 차들이 움직인다.
택시, 배달 오토바이, 화물트럭, 자가용까지.
수십, 수백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많은 시간들이, 왜 모두를 ‘전문가’로 만들지는 못할까?
운전이 익숙해질수록, 사람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방향, 브레이크, 차선 변경… 모두 루틴처럼 자동화된다.
시간은 흐르지만, 기술은 정체된다.
반면 F1 드라이버는 단 1초를 줄이기 위해 수백 번의 주행을 반복하고,
매 순간 데이터를 피드백받으며 기술을 갱신한다.
결국 같은 운전이지만, ’ 그들이 쓰는 시간의 밀도는 전혀 다르다.‘
시간은 늘 흐르지만, 그 시간이 어떻게 채워졌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무의식적인 반복은 실력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깨워낸 시간,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감각을 다듬는 훈련된 시간만이 변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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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높은 시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렸을 때 같은 시간을 공부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교실, 같은 교재였지만
누군가는 매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였고, 누군가는 늘 중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신기한 건 둘은 공부하는데 비슷한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타고난 머리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그 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어떤 친구는 쉬운 문제를 반복하며 단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안도했고,
또 다른 친구는 어려운 개념 앞에 머무르며 그 시간을 고통스럽게 버텼다.
누군가는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책을 덮었고,
누군가는 ‘왜 안 되는 걸까?’를 물으며 한 문제를 오래 들여다봤다.
결국 차이를 만든 건 총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얼마나 많이 마주했느냐, 얼마나 깊게 싸웠느냐였다.
그건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훈련’에 가까웠다.
반복이 아닌 갱신, 스시 장인의 시간
다큐멘터리 《Jiro Dreams of Sushi》(2011)의 한 장면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지로 오노는 85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일 똑같은 리듬으로,
쌀을 씻고, 밥을 짓고, 와사비를 갈고, 생선을 손질한다.
겉으로 보면 지루할 정도로 똑같은 반복이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매일을 갱신하고 있었다.
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Even at my age, after decades of work… I don’t think I have achieved perfection. But I feel ecstatic all day—I love making sushi.”
(나이 들어서도 수십 년간 일했지만, 나는 아직도 완벽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행복하다. 나는 스시를 만드는 것을 사랑한다.)
그가 말하는 완벽은 어떤 ‘도달점’이 아니라,
매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같은 도미여도 매일 상태는 다르다.
습도, 기온, 손님의 반응, 나의 컨디션까지.
어제와 똑같이 하면 절대 어제보다 나아질 수 없다.
장인의 손은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지만
그 안에는 수백 번의 미세한 조정과 감각의 피드백이 쌓여 있다.
그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수련에 가까운 몰입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짜 장인은 시간을 오래 쓴 사람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를 압축한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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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가’
나 역시 거의 20년 가까이 패션과 유통 현장에서 일해왔다.
바잉 MD, PR 마케팅, 스타일리스트, 리테일러까지…
일의 반복이 쌓일수록 능숙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을 꽤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건 일을 잘한다기보다
익숙함에 길들여진 상태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늘 하던 방식, 늘 하던 판단, 늘 하던 감각, 그리고 늘 만나던 사람들.
편하고 빠르지만, 그만큼 질문도 줄고, 발견도 줄어든다.
시간을 오래 썼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 스스로를 갱신하는 순간은 오히려 드물었던 것이다.
몰입과 과로는 종잇장 차이다.
‘오래 한다고 해서 성장하는 건 아니다’는 걸 알면서도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깨어 있는 시간을 점점 잃어버린다.
(사실 돌이켜보면, 엄청 바쁜 일정도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를 바쁘다고 믿으며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진짜 성장은
얼마나 오래 했느냐보다, 어떻게 해왔느냐에 달려 있다. 몰입의 총량이 아니라, 밀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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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깨어 있는가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몇 년을 일했느냐보다,
그 시간 동안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았는가,
쉽지 않은 선택 앞에서 얼마나 버텼는가 다.
편한 길을 택하지 않으려는 마음,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해보려는 태도,
그리고 나를 갱신하려는 많은 질문들.
그 몇 초, 몇 분이 쌓이고 쌓여
진짜 나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1만 시간이란
전문가의 완성의 시간이 아니라,
이제부터 진짜 시작해도 된다는 자격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