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피하는 방법에 대하여

작은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의 태도

by 석희

두려움을 피하는 방법에 대하여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로 유명한 마케팅 그루 ‘세스 고딘‘은

그의 또 다른 명저 『린치핀(Linchpin)』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을 피하거나 극복하는 능력은 성공의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그리고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덧붙인다.

*Linchpin : 수레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

린치핀(linchpin) 이미지

이 문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려움을 단순히 없애라거나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는 가를 묻는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바뀐다.

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을 마주할 때, 어떤 방식을 선택해 왔는가.



두려움은 회피가 아니라 거리 조절의 대상이다


돌이켜보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나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의욕을 끌어올리거나,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두려움, 정확히 말하면 나에 대한 의심 앞에 서면

“결국 이건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혼자 걱정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 인식은 이상하게도 두려움을 더 키우기보다는,

그 두려움의 크기를 조금은 더 정확하게 보게 만든다.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할 만큼의 무게로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은 나 혼자라는 생각


어떤 선택 앞에 서 있을 때, 사람은 흔히 주변을 살핀다.

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도와줄지, 누구와 책임을 나눠질 수 있는지,

혹은 실패했을 때 그 이유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하지만 두려움의 핵심 그리고 나오는 대답은 늘 같다.

결국은 혼자다. 내가 해내야 한다. 견뎌내야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두려움은 막연한 공포에서 조금은 더 구체적인 과제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작은 돌멩이’를 옮긴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거창한 도약 대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아주 작은 행동 하나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당장 길을 내겠다는 생각 대신, 눈앞의 돌멩이 하나를 옮긴다.

고사성어 ’ 우공이산(愚公移山)‘, 서양속담 ‘The man who moves a mountain begins by carrying away small stone’에서 처럼 말이다.

인도판 우공이산 영화 ‘마운틴 맨’(좌) 실제 인물 ’다시랏 만지‘(우)

그 돌멩이가 꾸역꾸역 출근을 하며 뭘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보내는 메일 한 통, 문자 혹은 전화 일 수도 있고, 필요한 결정을 미루지 않는 하루일 수도 있고, 귀찮아서 가고 싶지 않은 헬스장일 수도 있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불편한 대화를 피하지 않는 선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돌멩이의 크기가 아니라 뭐라도 실행하는 능력과 방향이다.



무모해지지 않기 위해 남겨두는 거리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경계한다.

조급해진 채, 나의 모든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붓는 일.

혹은 지금 굳이 필요하지 않은 소통까지 끌어안는 일이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때로는 또 다른 형태의 회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회피의 대가는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스 고딘이 『린치핀』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기보다 피하는 능력을 먼저 언급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하고.


지속할 수 없는 열정은 결국 다시 더 큰 두려움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부족한 속도, 조금 불안한 상태를 허용한다.

대신, 멈추지는 않으려 한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두려움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면, 형태만 달라질 뿐 두려움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 두려움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익숙해진 두려움은 더 이상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행동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려움을 피하는 방법이란

두려움을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움직이는 기술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 또한 지나간다는 감각


마지막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생각은 늘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밀레나 부스케스의 소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불안도, 망설임도, 두려움도

결국은 하나의 과정으로 남을 뿐이라는 감각.

이 생각은 나를 안심시키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를 옮기려고 노력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두는 것보다는,

무언가가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큰 결단이 아니어도 좋고,

완벽한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 결과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돌멩이를 옮기며 조금씩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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