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판타지 [시전 최종화]

by 서기선

# 현준

그동안 친근하게 느껴지던 기계음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간 도리어 사악하게 느껴졌다.

[이제부터 당신은 타인에게 주었던 고통의 크기만큼 같은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난날 당신의 따돌림과 폭행으로 젊은 사내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남겨진 가족의 슬픔에 비하면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의 오만과 독설이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한 것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과도 변명도 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막내 현준이 오열하며 하늘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호진

한편 옛 연인을 만난 호진은 그녀를 피해 달아나기 바빴다.

[오지 마! 오지 마!]

[왜? 사랑한다며 한시도 떨어지면 불안하다며 이제는 내가 싫어진 거야?]

[너는 이미 죽었어]

[아니! 그렇지 않아네가 있는 한 죽지 않아 이제 시작이야! 긴장해!]

호진이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어디든 나타나 호진을 괴롭혔다.

그런데도 달아나려 하자 그녀는 호진의 왼쪽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호진은 달아났다. 지금껏 그랬든 달아나는 호진을 어느새 따라잡은 그녀가 이번엔 그의 오른쪽 다리마저 부러뜨린 후 자기 집으로 끌고 갔다.

끌려가는 자기 모습을 거울로 확인한 그는 그 모습이 어딘지 익숙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했던 모습을 기억해 내며 몸서리치게 두려워했다.

[아아악! 잘못했어 이러지 마! 이건 집착이야!]

그를 끌고 가던 그녀가 가던 길을 멈추고 호진을 향해 소리쳤다.

[하하하! 나도 그랬어. 지금의 너처럼, 집착이라고 그만하자고 하지만! 너는 어땠니? 우리 부모님마저 죽였어. 그런데제 와서 그런 말이 나와? 뻔뻔한 거니 무식한 거니?]

[미안해! 하지만 더는 이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그녀가 호진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던 그때 호진은 가지고 있던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축 늘어진 그의 몸을 바닥이 집어삼키듯 밑으로 끌어내렸다.

밑으로 밑으로 한없이 내려갔다.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느꼈을 찰나의 느낌일 뿐 현실의 변화는 없었다.

그가 찰나의 시간을 마저 느끼기 전에 참기 힘든 현실로 다시 소환되었다.

그녀가 호진이 가지고 있던 생명수를 이용해 다시 그를 살렸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말했지 이제 시작이라고 너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야 날 벗어나지 못해 영원히]

이때 시스템의 알림과 그의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말로 한 가정을 몰살시켰습니다. 당신의 어긋난 사랑이 가져온 참혹한 결과를….]

[악! 아아악!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차라리 날 죽여줘]

그의 울부짖음 때문에 시스템의 소리가 묻혔다.


# 마리

[가족을 살해한다는 것은 천륜을 어기는 겁니다.]

[물론 살아온 환경이 불우했다 하더라고 충분히 다른 선택이 가능했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네가 뭘 알아! 그 사람은 죽어도 싸 아주 그럴만했어.]

시스템이 이야기하는 동안 마리가 끼어들어 항변하였지만, 시스템은 대응하지 않고 자기 말의 계속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죽인 2명의 자매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갔지만,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던 딸이었습니다.]

[당신의 부모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듯 그들 역시 그런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어떠셨나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딸의 죽음에 아파하던 부모님의 마음을 당신이 짐작이야! 하겠습니까. 이제 당신은 그 반대의 관점에서 그들이 느꼈던 고통의 무게를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통보에 가까운 시스템의 말이 이어지자 이마리가 오열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걔가 먼저 그런 거야 내 남자 친구를 빼앗은 건 그쪽이 먼저였다고. 그리고 죽을 줄 몰랐어]

[나 역시 사과받지 못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짓거리지마~]

[자기 합리화일 뿐 그렇다고 모두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죽을 줄 몰라서 정말이야.]

그녀가 울부짖었지만, 시스템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 준범

[너희가 올만 한 곳이 아니야 어서 이곳에서 나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친구들은 어리둥절해할 뿐 오히려 소리 지르는 준범을 달래려 하고 있었다.

[야~ 왜 그래?]

[재발 나가 부탁이야.]

그때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에게 친구들이 소중한 것처럼 당신의 장난으로 망가져 간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 혹은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둘 중 일부는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또 일부는 열심히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에게 마약중독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였으며 그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당신의 선택은 번번이 그들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파탄 난 저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 했으니 당신 역시….]

[그만!]

[제발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이곳에 오고 난 후 준범이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일행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으로 절망하며 오열하고 있을 때 다시 기계음이 들려왔다.

[이제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그들을 죽이고 한 칸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그것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고통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저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잔인한 방법으로 치르고 있었다.

아무리 허상이라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죽이는 것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허상에 의해 절규했으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들이 받은 생명수에 의해 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는 잔인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 이재형 형사

TV 화면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가 빠르게 전달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항의전화도 받았다.

시스템의 말대로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조차도 옹호하는 사람들과 비난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갑론을박하였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가십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마지막 미션 후 시스템은 사라졌고 더는 몽환 병으로 들어오는 환자들도 없었다.

그 사건이 벌어진 것도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간혹 누군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떠돌긴 했지만 대부분 거짓 뉴스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다.

혹자는 그들이 양심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결국 죄책감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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