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이별, 상실 이후, 내가 붙잡은 것들
한겨울 벌판을 달리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이유를 알수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쌓여 있던 무게가 한순간 터져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 삶의 방향이 아주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읽기, 쓰기, 달리기.
이 세 가지가 나를 다시 붙잡았다.
SNS를 비롯한 브런치 글조차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글을 완전히 놓았던 건 아니다.
매주 지역신문에 책을 소개하는 수요북칼럼은 빠짐없이 썼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만은 손이 닿지 않았다.
문장을 꺼내면 마음이 흔들렸고,
글을 쓰려하면 오래 눌러둔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겉으론 글을 쓰고 있었지만
속은 멈춰 있었던 것이다.
멈춤에는 이유가 있었다.
2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작년 말에는 외삼촌, 외숙모까지 세상을 떠났다.
예고 없이 찾아온 두 번의 이별
시간이 지날 수록 마음이 허전했다.
삶의 의미보다는 많은 것들이 하기 싫었다.
그러한 감정과 생각들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천천히 파고들었다.
아프다고 말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괜찮다고 하자니 마음 한쪽이 계속 내려앉았다.
일상은 움직였지만,
내 내면은 자주 같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차갑고 황량한 벌판을 걷다가 나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까지 굳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1km는 끝없이 길었다.
숨은 거칠었고 다리는 묵직했다.
그런데 그 거친 호흡 속에서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감각이 돌아왔다.
그게 달리기의 시작이었다.
사실 10년 전 드림리스트에는
“하프코스 완주, 언젠가 풀코스 완주”라는 문장이 있었다.
막연했고, 늘 미뤄졌고,
어디선가 잊힌 꿈이었다.
그 문장이 마음이 가장 무거웠던 시기에 다시 떠올랐다.
묵혀둔 꿈은 꼭 필요할 때 나타나곤 한다.
5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에 의도치 않게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속도나 기록보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속도’를 찾는 일이었다.
뛰고 멈추고를 반복해도 괜찮았다.
다시 뛰면 다시 이어졌다.
그 단순한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올해 하프코스를 세번을 뛰었다.
달리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흩어지던 마음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읽기와 쓰기, 그리고 달리기.
이 세 가지가
멈춰 있던 나를 다시 돌아가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글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게 한 것들을 정리하는 글로.
달릴 때처럼 숨이 터지지 않을 만큼만,
대신 멈추지 않고 쓰려한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맞는 리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