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심이 흔들린 순간들
"아빠... 하늘나라로 가셨어, 오빠."
막내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흘러들어왔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동생의 울음 사이로, 지난 몇 달이 숨 가쁘게 스쳐 지나갔다. 보호자 명찰을 달고 중환자실 자동문을 수없이 드나들던 날들. 응급실 침상 위에서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던 시간들. 늘 그 자리에 계실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온몸으로 밀려들어왔다.
큰 소리의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마음 어딘가가 서서히 내려앉는 감각이 몸 전체로 번져왔다. 그때 알았다. 내 삶의 중심축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평생 묵묵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며 가족을 책임졌고, 가난한 집안의 둘째로 형님과 다른 형제들을 뒷바라지해야 했던 시절에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법도,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법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은 사치라고 여기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결혼한 뒤에는 해외무역선으로 옮겨 더 긴 항해를 이어가셨다. 몇 달씩 집을 비우는 게 일상이었지만, 돌아올 때마다 가족을 위한 선물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바다에서 돌아온 뒤에는 우유대리점을 운영하며 비로소 가족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고, 그 시기 나는 우유 상자를 놀이터 삼아서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심을 꺼내셨다.
"목회를 하려고 한다."
그 한 마디가 그리고 시골 교회의 전도사로 시작된 그 시간은
우리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비만 오면 온 마당이 진흙탕이 되는 시골. 바람이 불면 벽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들던 낡은 사택.
구렁이가 나오기도 한 예배당, 예배 인원이 열 명도 채 되지 않던 작은 교회.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찾아간 그곳에서, 아버지는 30년을 한결같이 교회를 섬기셨다. 교회를 세우고, 교육관을 짓고, 마을 사람들의 애경사를 자기 일처럼 챙기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셨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보상이 없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그게 내가 아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번도 "안 된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전혀 다른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심지어 실패가 뻔히 보이는 도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언제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셨다.
회초리를 든 적도 없었다. 큰 소리를 낸 적도 거의 없었다. 그저 믿어주고, 지켜보고, 내가 선택한 길을 있는 그대로 응원하는 사람. 그런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신뢰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은퇴 이후, 아버지의 건강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어지럼증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신장질환으로 입원했고,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며 몇 달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지며 경추가 골절되었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그분을 '노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든든한 산 같던 아버지가 이토록 작고 여린 존재였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아팠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의 표정은 고통스럽기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에 가까웠다. 그 담담한 표정이 오히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장례를 치르고, 정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마무리한 뒤에도 내 마음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는 조용하지만 거대한 빈자리였다. 살아계실 때는 잘 몰랐는데, 떠나고 나니 그분이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가 더욱 선명해졌다. 문득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질 때, 무언가를 상의하고 싶을 때, 그제야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나쁜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는 산소를 가끔 찾는다.
출근 전 이른 아침,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풀밭을 밟으며 산소 앞에 선다. 말없이 서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흩어지던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부재가 내 삶에 남긴 무게를 조용히 마주할 수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한 장의 편지가 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써 내려간 짧은 편지. 거기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석중이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
그 짧은 문장이 지금도 내 안에서 천천히, 그러나 깊게 울린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방향을 잃을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그 문장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그날 이후, 나는 겉으로는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은 자주 흔들리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 흔들림을 지나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예고 없는 이별이 찾아왔다.
삶의 중심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리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