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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May 10. 2020

한 발짝을 위한 글 한 조각.

글 11

 제자리에서 어디로든 딛는 한 발에서부터 도전은 시작된다. 시작으로써의 도전은 대게 마음에 걸려있는 문제이기에, 도전이란 삶을 대하는 능동적 태도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여건의 제약이 있는 것 외의 모든 도전은 약간의 응원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그 선 너머로 가볼 수 있는 일이다. 가치가 없는 도전은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미약해 보이는 시작일지라도 박수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그 끝은 창대하리라 믿는다.


 내게 도전의 시작점은 언제나 명확했다. 도전이라 부를만한 일들은 항상 영혼에 무언가를 각인하는 일들이었다. 무언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은 또다시 이어졌기에, 시작과 끝은 항상 같은 지점에서 발화하고 그 변곡점마다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자국들을 잇는 선이 어느새 나를 나타내는 무늬가 되고, 저마다 다른 가치가 있는 모양을 품고 살게 된다. 나의 모양이 너와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크고 선명한 도전 중 하나이다. 모두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의 도전이겠다만, 나에게 있어서 이 도전은 자신의 세계를 구체화하겠다는 시도이며, 그 너머의 불확실한 것들까지 문장에 담아보겠다는 선언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많은 도전 중 하나가 아닌 이 하나를 위해 내 전부를 건 도전이라 말하겠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결국 우리는 표현할 수 있는 곳까지가 우리 세계의 외연이다. 생각을 글로 보여주는 일은 자신의 세계를 명확하게 그리며 확장해나가는 일이기에, 누구에게나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결국 언젠가는 마주칠, 늦고 빠름의 차이이고 마음의 결정에 달린 문제이다. 이곳에는 출발선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과 그 선을 넘어간 사람, 그 두 분류가 있을 뿐이고, 나는 후자일 뿐이다.


 선을 넘기 위해 거창한 타이틀은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글을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인식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개개인 모두가 작가이고 동시에 이를 소비하는 독자이기에 그저 '글'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즉, 글의 공유성이 작가와 독자를 좀 더 명확하게 나눌 뿐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노트와 메모장, 다이어리에서 문장들을 꺼내놓을 용기만 있다면 당신은 그 글들에 대해 독자(獨自)가 아닌 독자(讀者)를 만날 수 있다. 출발선 너머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당신의 그 지점을 응원한다. 저마다 다르게 태워 갈 그 발화점을 응원하고, 온몸으로 하얗게 태워버릴 혹은 조용하고 까맣게 타들어 갈 그 지점에서 각자의 무늬에 관해 이야기할 그 날이 오길 응원한다. 그렇기에 고민하는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치열하게 부딪혀 기화할 것들을 위해 한 조각의 글을 보내본다.





 우리는 정말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더욱더 말해야 한다. 그렇게 문장들이 부딪혀 치열한 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렇게 소란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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