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은 알고 있다. 내가 뭘 원하는지

프리퀀시, 그놈의 의자

by 설아

루틴이 하나 생겼다.

아이가 학교에 간 후, 혹은 운동을 마치고

트북과 책을 챙겨 스타벅스로 출근(?)하는 것.


빠른 걸음으로 15분 남짓한 거리.

운동도 되고 딱 좋잖아 싶지만 노트북, 책, 다이어리 등 등을 챙기다 보면 아무래도 걷는 건 무리다. 자주 병원 신세를 지는 나의 목과 어깨 보호 차원에서 결국 차로 이동한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두 곳.
한 곳은 다소 복작대는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몰에, 다른 한 곳은 정장 차림한 듯 말쑥한 2층 건물의 드라이브 스루(DT) 매장이다. 주로 DT점으로 간다. 새로 생겨서 깨끗하고 2층 두 면이 통유리창이라 탁 트인 전망으로 답답하지 않다.


자리는 늘 2층 맨 안쪽 구석이다.

폰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에어컨 직격탄을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 지인과 마주칠 확률도 적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이 친구 엄마라도 만난다면 곧바로 수다 삼매경에 빠질 것이고 십중팔구 책 읽고 글 쓰려던 계획은 멀리 건너 가버릴 테니까.




스벅 마니아냐고?
~혀 아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카페는 따로 있다. 하지만 거기는 오전 10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


그 시간까지 집에서 기다리다 보면, 결국 모닝커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캡슐 커피를 한 잔 내리게 된다. 어느새 외출할 의욕은 사라지고, 넷플릭스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집안일에 매몰되어 오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2주 전부터 아침 일찍 스타벅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8 오픈이니까 아이 학교 보내고 바로 나오면 된다.




사실 내가 매일 스타벅스를 찾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프리퀀시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초록색 캠핑 의자 때문이다. 라코스테와 스타벅스 로고가 나란히 박힌, 제법 근사한 캠핑 의자. 그동안 캠핑 의자 하나 장만해야지 하면서도 질질 미뤄왔는데, 어쩐 일인지 스타벅스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걸 증정품으로 딱 내걸었다.

그래!

이왕 마실 커피 스벅에서 마시자.


프리퀀시는 원래 관심도 없었다.
'저거 받겠다고 음료를 17잔이나 마신다고?

그냥 사고 말지 했다. 며칠 전 친한 동생과 스벅에 왔을 때도 언니인 내가 커피를 사고 프리퀀시도 쿨하게 선물했다.


그런데 그날 동생의 한 마디가 내 안의 ‘의자 욕망’을 깨웠다.

“언니, 이번에 캠핑 체어야! 라코스테 콜라보~”


머릿속에 계산기가 두드려졌다.

17잔 X 스타벅스 = 캠핑의자 + 커피 + 나만의 루틴
의외로 합리적인 소비 아닌가?

나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이제 커피는 핑계고, 의자가 본심이다.




드디어 프리퀀시를 다 채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벅 앱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라?
'오늘 분 증정품 소진'


도대체 어떻게 받는 거야?

네이버를 뒤졌다. 스벅도 말해주지 않는 꿀팁들이 블로그에 잔뜩 올라와 있었다.


화요일 제외, 오전 7시부터 신청

6시 58분 접속해서 대기

대기 상태 유지한 채 기다려야 함

신청 가능 날짜 중 가장 마지막 날짜 선택


다음 날 그대로 따라 했더니 대기자 수 4만 명.

네이버가 시키는 대로 기다려 겨우 들어갔다.

그러나 사방 100km 이내 캠핑 의자 없음.

(어떤 블로거는 캠핑 의자 찾았더니 제주에 하나 있더라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침 6시 58분 접속 또 접속. 여전히 대기자 수 4만 명. 캠핑 의자 품절!!!




"학. 씨."


무엇을 위해 매일 아침 스벅 앱에 들어가 광클을 했던가? 스벅의 상술에 나는 놀아났다. 결국 스타벅스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초록색 타월로 타협했다. 고급졌지만 우리 집에 비치 타월은

아주 아주 많다...



저렴하게 당근에 올렸다.

올린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내일 미국 가신다는 신사분이 내 타월을 데려가 주셨다.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 아침에 스벅에 오는가?


눈치 안 보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고,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끄적거리는 내 모습이 싫지 않다.

어쩌면 나는, 의자보다는 이런 공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필요한 걸 얻으려다 다른 걸 얻게 되는 것. 자본주의 마케팅에 굴복하면서도

내 루틴은 어느새 단단해졌다.


오늘도 나는

세계적인 대기업 스벅의 맨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자판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