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봄날이 길었으면
"엄마, 오늘은 안 가는 날이다."
큰 아주버님이 2층에서 나오시며 소리쳤다.
곱게 차려입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와 오늘은 안 가노?" 하시며 실망 가득 집으로 들어오신다.
어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돌봄 센터에 가신다. 정확히 말하면 주간보호센터이다.
수십 년을 가족 말고는 다른 사람과 어울린 적이 없는 어머님. 과연 적응하실 수 있을까 했는데
소풍 가는 아이처럼 전날 저녁 입을 옷 챙겨놓고 아침 일찍 미리 나와 매일매일 데려다 주기를 기다리신다. 일요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구십이 넘으신 시아버님이 침대에서 내려오시다 헛디뎌 골반뼈가 부러지셨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한 달을 계셨다. 고령의 노인들은 뼈가 잘 붙지 않아 안 그래도 약한 근력에 오래 못 움직이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다고 주위에서 걱정들이 많았다. 다행히 뼈는 잘 붙어갔고 치료는 끝났기 때문에 퇴원을 해야 했다. 혼자 못 움직이시니 완전히 붙을 때까지 요양원에 가 계시기로 했다. 문제는 시어머니였다. 혼자 계시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다.
시어머니는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대부분의 일상생활과 단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보통 땐 정말 세상사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할머니 같은 그런 상태이시다. 자식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모든 게 괜찮다고 하신다. 가끔 아버님 뒤통수에 대고 궁시렁궁시렁 소심하게 욕을 하긴 하시지만.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다 괜찮다는 게 걱정이다. 아파도 웬만해선 내색도 잘 안 하신다.
우리가 가면 그저
"아이고 *대다. 쉬어라."
"밥은 묵었나?"
"그래, 나는 개안타. 잘 있다." 하신다.
가끔 꿈을 꾸듯 현실감 없는 혼잣말을 하실 때가 있긴 하다.
"저기 거 군위 안 있나? *거 *너린 들판에 집 짓고 한데 다 같이 살면 되는데..."
인지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건지 현실감이 없으신 건지 잘 모르겠으나 증상이 꽤 오래된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결혼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러셨다고 하니까.
남편에게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다.
가끔 큰 형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들로 짐작하건대, 고된 시집살이 때문인 것 같다.
살림 잘하고 똑똑하고 꼼꼼하셨지만 좋은 말 입에 담는 게 어려웠던 시할머니는, 시골에서 섬머슴처럼 자라 살림에 잼병인 어머니가 못마땅했다. 끊임없는 잔소리로 구박하셨고 시아버님은 흔히 따라다니는 레퍼토리처럼 효자여서 어머님 편이 못 되었다. 어머님은 어느 순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뇌의 어느 부분을 쓰지 않게 되신 것 같다.
시부모님은 큰형님네와 주택에 함께 사신다. 형님네는 2층, 시부모님은 1층.
1층, 2층 현관은 따로이다. 한 대문 안에 두 집처럼.
큰 형님 부부는 대구에서 1시간 거리에 일하는 사업장이 있고 밤시간 교대 근무도 있어서 2~3일에 한 번 집에 오신다. 큰 아주버님은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어 어머님을 매일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러지 않으셨다.
남편은 주말에 KTX를 타고 연속 2주 내려가다가 격주로 가던 참이었다. 아버님이 병원에 가시고 3주 만에 어머님 몸무게가 10kg나 빠졌다. 잘 챙겨드시지 못한 모양이다. 아들들은 난리가 났다. 큰형님네로 화살이 쏟아졌다. 물론 형제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남편은 내려가지 못하는 평일엔 매일 전화기를 붙들고 어머님과 형들이랑 통화를 했고 술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큰 형님은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셨다. 몇 군데 가 본 중 햇살이 잘 들고, 밝고 싹싹한 센터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결정하셨다.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듯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40대 후반의 센터장은 3일 동안 집에 와서 1시간씩 어머님과 시간을 보내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4일째 되던 날 어머님은 센터로 가기 시작했고 선생님과 친구와 놀이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셨다.
그때 우리는 아버지를 요양 병원이라 불리는 새 학교에 입학시킨 일종의 학부모들이었던 것이다.
- 슬픔의 모양(이석원)-
긴 대화는 어려우신 분인데 괜찮으실까, 혼자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센터 가는 걸 너무나 좋아하셨다. 다들 고만고만 비슷한 증상으로 오시는 분들이라 오히려 서로 정서적인 돌봄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씁쓸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긍정적이신 어머님은 그 센터에서 모범생이시다. 활달하셔서 참여도 잘하시고 뭐든 그저 고맙다 하시고. 돌보시는 선생님들에게 인기쟁이가 되셨다.
"오늘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다 오고 놀이공원에도 갔다 왔다."(게임을 하신 모양이다)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불렀대이."
"아이고 그 선생님은 을매나 고운지."
"우째 *마카 그래 다 잘해 주노?"
유치원에서 신나게 놀다 온 아이가 엄마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듯 어머니는 들떠서 형님에게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어머니, 아버님 집에 오면 어머님이 기저귀 갈아주고 그래야 되는데...."
"아이고, 아직도 똥 싸나?"
"그라고 아버님 오면 학교 못 가는데 괜찮겠어요?"
잠시 생각하던 어머님은
"*상고 거 있으라 캐라."
전화로 어머님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형님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그래 아버님도 당하실 때가 되었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역으로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간다. 열심히 아이들을 키우고 나니 내가 50이 훌쩍 넘어버린 것처럼, 부모들도 50 넘고 60 넘고 자식 결혼시키고 손주 보고 나니 백발성성 80,90이 되어 자기가 자기를 돌보지 못할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부모의 이야기이고 닥쳐올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신 어머님은 이렇게 80 중반이 되어서야 학교(같은 곳)에 가셨다.
아버님이 퇴원하고 오시면 센터에 못 가실 텐데. 벌써 걱정이다.
어머님의 상태가 더 좋아지시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살아계시는 동안 행복한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못 가봤던 학교,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비록 진짜 학교는 아니지만. 거기서 소소하게라도 누리셨으면 좋겠다.
느지막이 온 어머님의 봄날이 길었으면 좋겠다.
<사투리 번역>
*대다 - '고단하다. 피곤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거 너린 - '거기 너른'
*마카 - '모두'
*상고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