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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Jan 11. 2021

영화롭게 말걸기

컨택트, 네 인생의 이야기



부러 원작 소설을 먼저 찾아 읽었다. 그것이 내겐 신의 한 수 였다. 사실 이 영화는 (웃지 마시라) 궁극의 러브 스토리라고 단언한다. 그러니까 이건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두사람의 사랑이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서사를 그린 영화다. 그리고 묻는다. 그대와 마주하고 있는(사랑에 빠질것임에 분명한) 존재를, 관계의 끝이 비극일 거라 예감한다고 한들 사랑을 시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에 의해 이미 알고 있다. 내게 도착(arrival)한 이 사랑을 내가 만지게(contact) 되리라는 것을. 사랑의 발현은 그렇듯 접촉으로 시작되지 않던가. 그래서 서로를 '껴안는' 행위는 내가 너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자 사랑의 비언어학적 소통의 하나다.

누군가가 내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일이며(어쩌면 외계인과의 조우만큼이나),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 더 솔직히 고백 하자면 선택하도록 하고싶지 않다. 그것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고 시작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어쩌면 사랑에 있어 의미로운 일은 너와 내가 어떤 모양의 사랑을 하고 있는가 보다는 너와 내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일지 모른다. 우린 모두 사랑에 빠질 땐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하거든.

우리의 과거는 오래된 미래이며 기억은 다소 편집이 가능해도 미지의 미래는 상상밖에는 할 수가 없다. 생(生)은 나와 동시간적으로 흐르는 그 무엇이기에 내가 나의 삶을 타자화 한다거나 감독의 카메라워크 처럼 익스트림 롱샷으로 바라보는 건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에 의해 내 삶을 통째로 영화필름을 돌리듯(패스트 포워드로) 미리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끝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삶의 끝을 알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은 모두 시한부의 삶이 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내 삶의 매 순간과 contact하기 위해 힘껏 껴안는 삶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영화의 이해를 위해 사피어 워프 가설(언어가 인간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로 흔히 모국어 외의 다른 언어를 습득할 경우 내 사고도 변화한다는 가설)이나, 페르마 이론(빛이 굴절하는 것은 빛이 최단 경로를 찾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보는 것도 좋을테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테드 창의 원작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혹 이미 영화를 보았다 하더라도 이 소설을 꼭 읽길 바란다. 소설 쪽이 훨씬 나았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외려 소설을 읽으며 이 부분의 서사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 우려(?)했던 부분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적으로 잘 풀어 냈다고 생각한다(차기작이 블레이드 러너 2049라던데 상당히 기대가 됨).  원작소설을 읽고나면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의 선택에 좀 더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외계존재인 헵타포드에게 가장 먼저 건넨 단어는 Human 즉, 인류이다. 헵타포드의 미래에 인류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고 그들은 지구에 도착(arrival)하여 인류(human)과 소통(contact)해야만 한다. 그들의 특수한 표의문자도 그렇고 여러모로 불교의 윤회사상을 떠올릴수 밖에 없었는데,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고, 그로 인해 미래의 내가 있을 것이며, 우리들 너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영화는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 되 미래를 변형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덧1.
한국판 제목의 컨택트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리고 감독의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나 나는 사실 한국판 제목도 꽤 맘에 들었다. 원칙을 따지자면야 원작의 제목은 '네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실지로 영화 내내 컨택트 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오기도 했고 루이스와 헵타포드가 체경(투명 방어벽)을 사이에 두고 첫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며 '컨택트'라는 제목이 썩 훌륭하다고 판단했다. 외화의 제목은 나도 거의 원제를 따오는 것이 기본적인 리스펙트라 생각은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조금 의견이 다르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컨택트'라는 제목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덧2.
영화의 OST가 클래식 음반으로 유명한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되었다고 해서 깜놀! 특히 영화의 도입부와 엔딩에서 흐른 막스 리히터의 선율이 참으로 묵직하게 와닿았다. 심연과 사색의 음악가라는 별명이 어째서 붙게 되었는지 알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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