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결핍’이란, 시간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리 인간 세계에선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사고력을 바탕으로 ‘정의’를 해왔습니다.
‘정의’는 삶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판단해야 하기에, 언어와 약속 같은 정의가 없다면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해석이 스며든, 잘 ‘정의’되어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 삶의 편의와 효율을 위해 내려진 이 ‘정의’가 사실은 해석이며 상대적인 것임을 종종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정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절대화하는 순간, 그것은 곧 우리의 ‘결핍’이 됩니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결핍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결핍을 돌아볼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도,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약속’에 불과합니다.
혹시 ‘이 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주는 순환합니다. 그 순환에 맞춰 낮과 밤이 생기고, 인간은 그에 맞춰 유전적·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효율적인 삶을 위해 ‘과거와 미래’, ‘낮과 밤’ 같은 정의를 만들었겠죠.
그 결과, 우리는 당연히 ‘이 순간’이 흐르는 것처럼 인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사고로 인해 ‘기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고정된 기억은 “방금 전 무언가를 했다”는 식으로 인식되기에, 우리는 그것을 ‘지나간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지나갔다’고 여기는 우리의 해석일 뿐입니다.
선사시대 사람들도, 고려시대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도 모두 같은 ‘이 순간’에 머물렀습니다.
변화한 것은 오직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고 있는 순환의 형태일 뿐입니다.
“이 순간은 언제나 같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순환하며 흘러갈 뿐입니다.”
지나간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뿐이죠.
모든 이는 이 ‘순간’ 안에서 사고의 흐름 속에서, 혹은 노화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우리 역시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순간’에 머무르다 보면, 죽음은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순환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어느 먼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먼 순간은 사실, 바로 이곳입니다.
생명과 죽음, 나와 모든 이들은 결국 이 ‘순간’ 속에서 순환될 뿐입니다.